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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글로벌 인재 육성에 박차 - 서울 은광여고

국제교환학생, 밤샘독서 등

다양한프로그램 주목

은광여고 김정열 교장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해 여름이었다. 미국 호프웰고와의 교환학생과정을 취재차 나선 길에 학교 정원에서 화단을 가꾸고 있는 김 교장을 봤다. 흙 묻은 하얀 목장갑, 작은 호미가 어색한 하얀 팔을 가지고 있었다. 실수로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을 뻔 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김 교장을 교장실에서 다시 만났다. 3년간 화단처럼 가꿔온 학교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배정된 학생 한숨부터 내쉬던 학교

지난 20여 년간 은광여고는 심한 부침을 경험했다. 87년 재단의 부도 이후 관선이사체제가 지속되면서 투자가 부실해진데다 2001년까지 실시됐던 2부제 운영 탓에 은광여고는 대외적으로 공부 안하는 시설 안좋은 학교로 인식돼 있었다.

오후가 되면 면학분위기가 흐트러지기 일수였고, 이웃학교 학생들이 한창 공부할 시간에 은광여고 교복을 입고 시내를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은 학부모에게 나쁜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당연히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를 기피했다. 고교 배정 시 은광여고로 결정되면 현장에서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리막을 걷던 학교는 2002년 새로운 재단이 들어오면서 반전됐다.

재단(이사장 김승제)은 60년대 여성인사 배출 1위를 기록한 명성은 뒤로 하고 처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화장실 개보수, 책걸상 전면 교체 등 시설투자 부터 적극 나섰다. 재단이 하드웨어를 갖춰 나가는 동안 2005년 은성여중 교장으로 있던 김 교장이 부임하면서 학교는 내실을 다졌다.

김 교장은 학생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교사들의 견문과 식견을 넓히는데 우선 투자했다. 2004년 중국연수를 시작으로 2005년 뉴질랜드, 호주 견학, 미국 자매학교 참관 등 잘 가르치는 교사를 만들기에 주력했다. 또 매년 전체 교사 추천과 각종 평가를 근거로 Best Teacher를 선정 격려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동기를 부여했다.

‘좋은 학교를 만들자’는 공감대가 교사들 사이에 형성되면서 전과목에 걸쳐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수업이 전개 되는 등 수업방법이 개선됐다. 또 학생들의 자율학습시간에는 학습 노하우와 주요내용 요약 프린트물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양재 교감는 “처음에는 교장선생님의 마인드를 따라가지 못한 교사들이 많아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학생들을 보면 성과가 보이니 신나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학교장과 교사들의 노력에 학부모들은 수업 중 휴대폰 사용금지 등 학교 시책에 전폭적인 지원으로 힘을 보탰다.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한 각계의 열정이 모이자 성과가 나타났다. 지난 해 서울대 합격자 수는 13명으로 대구 경일여고와 함께 전국 여고 중 최고를 기록했다.

국제무대를 향한 거침없는 도전

은광여고의 성과는 명문대 진학 몇 명 따위의 형이하학적인 수준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은광여고를 좋아하고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국제화와 정서교육 등과 같은 특별한 학교 운영과 비전 때문이다.

김 교장이 처음 부임하면서 처음 학생들을 만나 생각한 것은 국제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구비시키겠다 것. 선진국에 주눅 들지 않는 학생을 만들기 위해 시도한 것이 국제화였다. 국제화 파트너를 찾아 미국, 뉴질랜드, 호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학교들과 교류를 추진했고 매 방학 마다 학생과 정보, 문화 등을 교환하며 학교와 학생의 글로벌화를 도모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국 호프웰고와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단순한 견학 또는 탐방차원이 아니라 2주 이상 상대 학교에 머물며 실제 교과 수업에 참가하는 말 그대로 학생을 교환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 학생들은 한국에 와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들어가 교과를 듣고 태권도, 한국무용 등을 특별활동으로 배웠다. 또 한국 학생들은 미국 호프웰고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교과수업을 2주 동안 들으며, 하버드, MIT 등 미 명문대를 방문해 세계리더의 요람을 체험하기도 했다.

학생들과 함께 미국에 다녀왔던 정진현 교사는 “학교에서도 원어민 강사를 통한 수업을 강화하고 지난 여름 미국 학생들이 왔을 때 홈스테이를 제공한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미국에서도 어색함이 없이 당당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뿌듯했다”며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의 경우 포부가 커지고 견문이 넓어지는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뉴욕주립대, 텍사스대, 일본 게이오대에 진학하는 등 국제무대를 향한 은광여고 학생들의 거침없는 도전이 시작되고 있으며 토익만점 등과 같은 부수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부모와 밤새 책읽은 추억 만들어

“은광여고가 추구하는 인재상은 공부 잘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성품이 온화한 바탕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취재 내내 학생들을 ‘우리 애들’, ‘우리 애들’이라고 부르던 김 교장은 학생들이 단순한 공부기계에 머무르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래서 그런지 은광여고에는 학생들의 정서를 바르게 교육하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체벌없는 학교와 밤샘독서.

은광여고 학생들이 교내에서 각종 규칙을 위반했을 때, 교사들은 체벌을 하지 않는다. 숫자만 기록했다가 일곱 번이 되면 분기에 한 번씩 있는 주말 등반대회에 참가시킬 뿐이다. 인근 청계산을 오르는 이 등반은 위규학생들이 참가하지만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는 것이 교사들의 전언이다.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가방도 들어주고 물도 함께 나눠마시고 학교에서 준비한 간식과 식사를 함께 나누며 사제의 정을 나누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평균 학생 17~8명에 교산 11명 내외가 참가하는 이 사제동행등반에서 학생들은 “잘못을 했는데도 대접을 받고 오는 산행”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함께 땀을 흘리며 마음을 여니 교육효과는 만점이다.

또 은광여고는 학기에 한 번, 학부모와 함께하는 ‘밤샘독서의 날’을 실시한다. 학교 정원에 들을 달아 밝혀주면 부모님과 학생들이 밤을 지새며 책을 읽는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오는 감동뿐만 아니라 그동안 모자랐던 가족 간의 대화를 소곤소곤 나누다보면 집이 아닌 학교에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장은 “이런 선생님과의 좋은 기억, 부모님과 함께 책을 읽고 나눴던 대화들은 결국 여고시절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이런 추억이 결국 안정된 정서에 기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사회에 통하는 인재육성이 목표

평소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학생의 근황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김 교장의 서랍에는 얇지만 큰 파일철이 있다. 전교생들의 얼굴사진이 붙어있고 그 밑에는 빼곡하게 학생 신상에 관한 메모가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의 얼굴을 외우는 일종의 비책(秘冊)인 셈이다.

‘화단에서 꽃을 가꾸던 정성이 저기에도 머물렀으리라’고 생각하며 발전구상에 대해 물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도 많지만 여건이 안 돼 안타깝다는 김 교장은 2010년으로 예상되는 학교선택권 확대를 학교 발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학교시설 등 여러가지 불비한 여건이지만 IT교육장, 수영장 등 시설투자를 늘리면서 학력과 바른 심성을 갖춘 국제화 지향의 학생육성으로 특화시킬 계획이다. 또한 올해 일부 학생의 미국대학 입학을 계기로 유학반 운영에 대한 복안도 마련 중이다. 현재 평균연령 56세의 교사진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면 좀 더 역동적인 학교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유를 위해 진지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초석이 됐으면 한다는 김 교장을 바램처럼 국제사회에서 통하는 성숙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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