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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물불’에 마음을 빼앗기다

서구에서 발명된 ‘전기 테크놀로지’는 100년 전 조선인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위력적으로 다가왔다. 전기와 가로등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몰랐지만, 사람들은 전기가 펼치는 마술의 현란함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말(言)을 수송하는 도구가 편지밖에 없었던 조선의 현실에서 사신이 본 서양의 전신(電信)과 전화역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묘한, ‘사람을 현혹하는 서양의 기계’였다. 그렇지만 비록 인간을 현혹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문명개화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면 이를 끝내 거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악마의 불꽃?
1887년 이른 봄이었다. 수많은 종로 사람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키를 훌쩍 넘는 궁중의 담벼락으로 몰려들었다. 경복궁에 켜진 ‘물불’을 보기 위해서였다. 화려한 빛으로 사방을 비추는 물불은 다름 아닌 ‘전등’이었다. 사람들은 전기가 펼치는 마술의 현란함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당시의 사람들은 전등을 물불이라 불렀다. 그 이유는 전깃불이 연못에 반사되어 마치 물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경복궁에 한국 최초의 전등이 가설되기 4년 전인 1883년 조선 보빙사 일행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으로 전등과 마주쳤다.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은 마치 거미줄이 처진 것 같았다. 전깃줄로 가득한 하늘과 길가를 따라 즐비한 가로등을 바라보며 말을 잊지 못했다. 그들은 전기와 가로등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몰랐다. 보빙사 일행은 전깃불이 인간의 힘이 아니라 ‘악마의 힘’으로 켜진다며 전기에 대한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십 년이 훨씬 넘은 후에도 전기에 대한 경이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던 민영환은 도중에 유럽의 각 도시들을 유람한다. 민영환은 근대화된 유럽의 거리를 활보하며 전깃불과 가스등을 대면했다. 그의 눈 속으로 들어온 문명의 이기(利器)는 너무나 밝아서 별과 달빛을 빼앗는 것 같았다. 이처럼 서구에서 발명된 ‘전기 테크놀로지’는 100년 전 한국인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위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제 전기 테크놀로지로 대변되는 자본의 스펙터클이 자연의 원형성을 파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근대 사회의 입구에 ‘전기의 마력’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인간의 눈을 현혹하는 요술

인간의 말(言)을 어떻게 실어 나를 것인가. 100년 전 한국인들에게 인간의 말을 수송하는 도구는 글자(활자)로 된 매체였다. 대표적인 형식은 ‘편지’였다. 그러나 전기의 발명과 함께 편지의 전성시대는 황혼 속으로 사라지고 ‘전신’의 시대가 떠오르고 있었다.

한국 최초의 수신사였던 김기수는 누군가로부터 전신에 대해서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신의 원리와 ‘속도’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었다. 만 리나 되는 장거리를 일순간에 가로지르는 전신의 위력을 김기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공간, 당시 한국인의 인식으로는 판단 불가능한 한계 영역을 한 순간에 이동하는 테크놀로지가 바로 전신이었다.

김기수뿐만 아니라 일본과 서구를 여행한 한국인들의 전신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전신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묘한 기계였으며,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마치 ‘요술쟁이의 거짓말’ 같은 것이자, ‘사람을 현혹하는 서양의 기계’였다. 그렇지만 비록 서양의 전신이 인간을 현혹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문명개화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면 이를 끝내 거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수십 년 이래, 일본은 오로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급선무로 삼아, 각가지 기계 부분의 설치와 규모는 아주 크고, 여러 가지 쓰는 기물의 제작은 재주와 공교로움이 겸비되어 하늘의 조화력(造化力)을 빼앗고, 땅이 만물을 이롭게 하는 힘을 다하는 것이라고 이를 수 있다.(이헌영, <일사집약>, 1884)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서구의 기계문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성현이 말씀하신 ‘기기음교’(奇技淫巧)의 극치였기에 배척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나 현실은 ‘눈을 현혹하는 음란한 기술’인 서양의 기계가 ‘하늘의 조화력’을 대체하고 있었다. 전신과 전화가 부여한 시공간의 ‘단축’은 확실히 획기적인 소통방식을 창조했다.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던 전화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근대적 인간의 관계망을 새롭게 조직하는 데 있었다. 전화는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거나 유통하는 창구였다. 전화로 인해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타자와의 공간적 ‘거리’가 전파를 타고 축소되었다. 더욱이 전화는 전신과 다르게 ‘소리’를 직접 실어 나르는 특징이 있었다.

전신이 송신자의 정보를 교환수가 특정한 코드로 변환해서 수신자에게 공급한다면, 전화는 송신자의 생생한 소리를 직접 수신자에게 전달한다. 유성기가 복제된 소리, 즉 녹음방송이라면 전화는 생방송인 셈이다. 그만큼 송신자와 수신자의 거리를 축소하며 서로의 관계를 긴밀하게 구축하였다. 하지만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전화와 전신은 근대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무기로 사용되었다.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러일전쟁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안 중에 하나가 바로 일본이 한국에 설치한 ‘전선’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군을 한국에 주둔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만큼 전화와 전신이 근대 제국주의 열강들에게는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통신을 점령하는 자가 곧 전쟁에서 승리하기 때문이었다.

감각의 확장, 거리의 소멸
전기 테크놀로지의 발명은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기도 했지만, 역으로 인간의 감각을 지나치게 시각의 영역으로 축소시켰다.

갑자기 무대가 바뀌면서 우레 같은 바다 소리가 장내에 가득 차고 망망한 창파 위에는 윤선들이 좌우로 오가기도 하고, 혹은 평원과 광야, 깊은 산과 긴 골짝을 기차가 번개같이 달리는 것 같다. 혹은 경마장에서 여러 말들이 앞을 다투어 달리는 듯하여 그곳에서 관람객들이 실지로 활동하는 것 같으니, 이는 활동사진의 조화로 전기의 힘으로 조작하는 것이라 한다.(이종응, <서사록>, 1902)

1902년 영국의 에드워드 7세 대관식에 참석했던 이종응은 전기의 원리를 이용한 활동사진(영화)을 관람한다. 그는 영화의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피사체들이 실제 자신의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당시의 활동 사진은 ‘무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종응은 증기선이 마치 우레 같은 바다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고 느낀다. 이종응과 같은 시각중심의 감각변화, 즉 시각이 모든 감각을 압도하는 현상은 근대 세계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여행을 하면서 자연과 소통하는 인간의 감각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과거의 여행에서는 풍경(승경)에 대한 몰입이 가능했다면, 기차 여행은 몰입의 즐거움을 조각(분산)낸다. 따라서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의 자연은 자연을 격자에 가둔 화면이지 풍경이라고 할 수 없다. 때문에 빨리 달리고 있는 기차의 창밖의 풍경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을 집중적으로 동원해야만 한다. 이는 감각의 확장이 아니라 감각의 소모를 유발한다. 결국 증기기관차 자체가 일종의 미디어인데, 이는 인간의 감각을 ‘간접화’하게 만드는 미디어이다. 자연과 인간이 일대 일로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게 아니라 기차라는 미디어를 매개로 간접화되는 것이다. 여행자들의 파노라마적 풍경체험은 결국 영화를 관람하는 것과 같았다.


결국 사신들이 보았던 서양의 기계문명은 신이 계시한 질서나 자연 그대로의 질서가 아니었다. 인위적인 기계가 자연의 속성을 대체하고 있었다. 서양의 기계문명은 신의 영역을, 자연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인간의 척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또한 전신과 전기 및 전화를 견문한 사신들은 한결같이 ‘형언할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이는 사신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서구의 근대적 문물에 대해서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사신들은 서구의 근대적 기계문명을 표상할 수 있는 지적 체계, 즉 인식 틀이 아직까지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에 곤혹스러웠다.

서구의 문명에 대한 표상 불가능성은 여행자로 하여금 가능한 있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기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요컨대 사신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사물에 대한 현상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강박 사이에서 사유의 균열을 느꼈다. 현상과 표현 사이에서 그들의 사유는 찢겨지고 균열되었다. 이러한 사유의 찢김과 균열 속에서 한국의 근대는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사신들이 견문한 전신, 전기, 전화 등은 모두 ‘속도’와 관련된 ‘전기 테크놀로지’였다. 이것들은 단순히 근대적 미디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세계를 구조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근대 세계란 시간과 속도에 지배받은 세계이다. 서로 다른 공간은 근대적 시간과 속도에 의해 균질화 된다. 전기를 이용한 전신은 지구상의 모든 시공간이 문명사회의 관측범위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이며,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들 간의 시차도 지워버린다.

결국 전신의 발명은 ‘거리의 소멸’을 가능하게 했던 매스미디어였다. 이러한 근대적 미디어의 절대적 속도의 본성은 절대적인 권력과 절대적이고도 즉각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전지전능한 권력이었다. 현재 우리는 신의 세 가지 속성인 편재성, 동시성, 즉각성을 ‘전기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획득한 셈이다.

전신과 전기 및 전화를 견문한 사신들은 한결같이 ‘형언할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그들은 서구의 근대적 문물에 대해서 뭔가 말하고 싶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지 못했다. 서구의 문명에 대한 표상 불가능성은 여행자로 하여금 가능한 있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기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사신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사물에 대한 현상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강박 사이에서 사유의 균열을 느꼈다. 이러한 사유의 찢김과 균열 속에서 한국의 근대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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