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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교보다 학원이 더 낫다?

변수란 | 일본 동경한국학교 파견교사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수업이 끝난 후 학급 아이들을 잠시 남게 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담임선생님이 남으라고 하면 야단맞는 일을 제외하고는 다들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보충 학습을 위해서 혹은 교실 청소를 위해서 반 아이들을 남게 하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게 되었다. 잠시 남으라는 말에 되돌아오는 첫 마디가 “저, 학원가야 하는데요”다.

그래서 요즘은 청소도 수업이 끝나고 하기가 힘들다. 한 분단에 열 명이나 되건만 청소를 할 수 있는 아이는 고작 한두 명이다. 거짓말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현 상황이 그렇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특기적성교육은 수업이 끝난 후 바로 시작이 되고, 개인적으로 학원에 가는 아이들도 학교에서 머뭇거릴 시간은 좀처럼 나질 않는다. 청소야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미리 해둘 수도 있다지만 보충 학습(보습)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학원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남기를 꺼려하는 것에는 씁쓸함마저 느끼게 된다.

입시 전쟁을 비롯한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등 비정상적 교육열은 일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중·고교의 입학시험이 있는 일본의 경우 학원 수강에 있어서는 한국을 초월한다고 볼 수 있다. 제법 오래된 통계이기는 하나 93년에 실시된 구 문부성의 조사에 의하면 500만 명이나 되는 초·중학생이 학원에 다닌다고 나와 있다. 컴퓨터다, 영어다 해서 배울 것이 더욱더 많아진 지금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숫자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왜 이렇게 학원이 날이 갈수록 강성해져 가는 것일까? 일본의 교육행정학회장으로 있는 유우키 마코토씨는 그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그 첫째는 진학과 학력 획득을 위한 경쟁, 둘째 학원을 통한 학교교육의 보상, 셋째는 최근 높아지고 있는 사립 중·고교 지향을 들고 있다. 사립 중·고교로의 진학률이 높은 지역일수록 학원에 다니는 비율이 현저히 높게 나와 있다.

일본의 한 일간지에서 얼마 전 ‘학원의 존립 여부’에 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 6344명 가운데 약 80%가 학원은 ‘학력 향상을 위해서 있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초·중학생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 ‘학원에 보내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중·고교 수험을 위해서’라는 답변이 2135명 응답자 가운데 약 60%로 가장 많았고,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해서’, ‘학교 수업을 따라 가기 위해서’, ‘기타’가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다. 또한 ‘다니고 있는 학원의 종류’에서는 ‘진학 학원’, ‘보습 학원’, ‘기타’의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여 복수 회답을 가능하게 한 결과 응답자 1920명 가운데 ‘진학 학원’이 65%, ‘보습 학원’이 25.2%, ‘기타’가 16.1% 순으로 나타났다. 교재비 등을 포함한 학원비 지출액 조사에서는 3만 엔 이상이라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30%를 넘어서고 있다.

위 여론 조사의 결과처럼 평소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다니는 보습 학원보다 입시를 위해 다니는 진학 학원 수강률이 몇 배나 더 높은 것은 사립이나 이름 있는 중·고교로 입학 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부터 진학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보호자의 의식에는 공립학교의 전반적 분위기에는 만족하고 있으나 수업의 질적, 양적인 면에서는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자들의 이런 생각은 근본적으로 학교의 기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겨난 것이다. 학교는 원래 지·덕·체 3요소를 아우르는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최근에 와서는 정보교육까지 포함되어 교육과정 내용이 훨씬 많아졌다. 이에 반해 진학 학원 및 보습 학원은 상급 학교로의 진학 및 학력의 보강, 향상에만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학교와 학원의 존재 의의가 다르다. 의무교육1) 으로서의 공립 초·중학교 교육은 모든 아동·학생들에게 최저한도에서의 교육을 평등한 시각에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요즘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수강료가 비싼 학원에 쉽게 보낼 수 있고 고액 과외도 주저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경제력과 학력은 비례한다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언젠가는 학교 무용론이 가시화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학급의 남자 아이 한 명이 결석을 하는 바람에 그날 실시한 국어 시험을 혼자만 보지 못했다. 그 다음 날 등교한 그 아이에게 오후에 남아 시험을 보고 하교하도록 지시했더니 수학 학원을 가야 해서 남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참을 그 아이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니 내일도 다른 학원이 있어서 안 되겠고, 모레쯤엔 남아서 하고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쩔 땐 ‘그래, 모르는 건 학원에 가서 배우거라’, ‘학원 숙제도 많은데 학교 숙제는 조금만 내 줘야겠지?’라고 교사로서 무책임한 말을 할 때도 솔직히 있다. 물론 화가 나서 한 말이긴 하지만 학원에 의존하는 것은 책임 방치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지난 호에서 일본 어느 지역의 중학교에서는 학원 강사를 불러 보습을 하게 하는 등의 활동으로 학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는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이 또한 교육 행정이 학원에 접근하고 있는 한 단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일반화가 되면 그다지 모양새는 좋지 않은 일이라 여겨진다. 어떻게든 공교육의 본질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체능과 같이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전문적 교육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한 교과 공부는 학교에서 마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의무교육 기간 동안 만큼은 학교에서 보충 학습 등을 통해 학습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수업을 끝내고 또 보충 학습을 한다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 본격적으로 학급 업무를 보거나 교재 연구 등을 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힘든 일이다.

그러나 몸은 좀 고될지언정 아이들이 학교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의식 없이 학원을 오가는 일은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학교 수업을 좀 태만히 해도 ‘학원에 가니깐 괜찮다’라는 인식이 심어지면 그 아이는 계속적으로 학교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런 아이들은 학원에 가도 여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학력 향상 또한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학교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또 다른 학원을 찾게 되고 이중 삼중의 학원 수강은 불가피해진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빼앗기게 되고 보호자들은 보호자대로 교육비 지출에 부담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교육에 관한 근본적 의식의 전환이 없는 한 학원은 계속적으로 늘어갈 것이고 학교보다 학원을 더 신뢰하는 보호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학원은 이제 더 이상 학교의 보조 기능을 하는 장소가 아닌 메인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고 고착된 사회 풍토로만 치부해서 간과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이야말로 공교육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한계점으로 지적되어 온 부분을 다채로운 시각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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