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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할머니의 찬조출연


학예발표회 때 우리반은 연극을 하기로 결정했다. 무슨 연극을 할까 아이들과 함께 의논을 하니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자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계몽 차원에서 학교 주위를 맴돌면서 아이들을 괴롭히고 돈을 빼앗는 학원폭력에 대한 연극을 하기로 하고 각자 맡은 배역을 정했다. 재판장, 선생님, 계몽위원, 아이들, 폭력배….

아이들은 자기가 맡은 배역에 따라 열심히 연습을 했다. 대사를 잘 외우지 못해 끙끙거리는 아이들, 대화와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비지땀을 흘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법 의젓하게 연극을 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대견스러웠다.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학예발표회 날이 왔다. 농촌 학교라 학예발표회가 마치 온 동네 잔치분위기였다. 프로그램에 의해 차례대로 발표가 시작되고 드디어 우리반 차례가 됐다.

연극이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무대에서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돈을 빼앗는 폭력배들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갑자기 웬 할머니 한 분이 씩씩거리며 무대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리둥절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나에게 덤벼드는 것이었다.

왜 우리 4대 증손자인 명석이를 나쁜 폭력배를 만들었느냐고 원망하면서 마루바닥을 탕탕 치고 고함을 질렀다. 자초지종을 말하기도 전에 막무가내로 대성통곡을 하며 펄펄 날뛰는 것이었다.
자기 증손자 명석이는 원래 착한 아이였는데 선생님이 교육을 잘못시켜서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고 돈을 빼앗는 나쁜 아이로 만들었으니 어떻게 책임을 지겠느냐고 따지는 게 아닌가.

졸지에 나는 아이들 교육을 잘못시킨 '범인'이 되고 말았고 그날 우리 반 연극은 할머니의 갑작스런 찬조출연으로 인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연극과 현실을 착각하는 연세 많으신 할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증손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이야 오죽하리요. 요즘도 가끔 그때의 추억이 생각날 때면 엷은 웃음이 살포시 입가에 번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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