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전 남인천여중 교실. 방학을 맞아 인천 남부교육청이 마련한 여름 특별교실에서 중2 학생들의 언어영역 강의를 맡은 유충렬 교사(인천 관교중)가 '협상 수업'을 진행 중이다.
"자, 모두 네 명씩 앉았지? 그럼 지금부터 초코 아이스크림 2개, 딸기 아이스크림 1개씩을 줄 테니 나눠먹는 방법을 협상해 보자.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양보하는 건 안 된다."
이내 생각에 잠긴 아이들이 침묵 끝에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돌아가며 한 입씩 먹자." "안 돼. 크게 깨무는 사람이 유리하잖아." "그럼 아이스크림을 자를까?" "딸기, 초코 아이스크림을 다 맛보고 싶은데…." "딸기 아이스크림을 이등분해서 네 덩이로 만들고 초코는 사등분하면 되겠지?" "좋아. 그렇게 하자" "어! 이게 뭐야. 벌써 녹았잖아…." "바보들. 우리 조는 벌써 그렇게 해서 먹었는데…."
각 조의 협상 결과 발표가 끝나자 유 교사는 "협상은 서로가 모두 이익을 얻도록 합리적인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점과 손실이 크게 나기 전에 신속히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먹어야 하는 게 그 이치"라고 강조했다.
이날 수업은 관내 중2학생 19명과 '교육 협상을 통한 말하기·듣기 능력 신장'을 주제로 한 4차시 수업 중 둘째 시간. 유 교사가 개발한 '아이스크림 협상' 수업을 접한 학생들은 생기가 넘친다. 광성중 소윤상(14) 군은 "친구들의 생각을 듣고 말하면서 의견을 좁혀갈 수 있었어요. 내 이익을 챙기려면 상대방의 생각과 요구도 고려해야 한다는 걸 배웠고요"라고 말한다.
3, 4차시에도 유 교사는 학생들에게 '복권 당첨금 협상' '참나무 딜레마' 문제를 제시, 토론을 통해 협상 방법과 절차를 익히고 합의문을 작성해 갈등을 해결하는 데까지 진행했다.
사실 유 교사가 국어 수업에 '협상'이라는 전략을 끌어들인 것은 4년 전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전쟁과 평화'라는 협상 동화를 접한 그는 학생들이 장래 겪게 될 갈등 상황에서 대립하지 않고 타협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사회의 많은 갈등들은 사실 협상보다는 관계나 권위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유 교사는 "어려서부터 협상 자세와 기술을 익히고 습관화하도록 사회 이슈를 교육적 협상 과제로 가공해 수업에 적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각기 개별적인 활동이 아니라 구체적인 활동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착안, '협상'을 학생들의 총체적 언어학습을 돕는 도구로 봤다. 그는 " 학습과정에 협상을 끌어들여 상대방의 요구를 충분히 '듣고'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언어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수업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유 교사는 1998년 인천 인화여중 근무 때부터 특기적성교육의 일환으로 협상반을 지도했고, 국어 '말하기 듣기' 시간에 협상 수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 교원대에서 받은 석사학위도 '협상 중심 말하기·듣기 지도방안 연구'로 받았다.
또 1998년에는 인천지역 중고교 교사들과 '협상자료개발연구회'를 조직해 지금까지 복권협상' '분당톨게이트 통행료 협상' '배추협상' 등 20여 가지의 협상 수업 프로그램과 단계별 학습 자료, 수업지도안을 개발했다. 연구회 교사들은 현재 3학년 생활국어 '협의하기' 단원(4차시) 시간이나 재량활동 시간에 이들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아이스크림 협상은 국가홍보처가 공익광고로 제작해 TV에 방송되면서 '녹기 전에 먹는 게 협상이죠'라는 인상적인 카피로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협상자료개발연구회는 협상 수업이 하나의 '화제거리'로 잊혀지기보다는 효과적인 수업방식으로 정착되길 바란다. 유 교사는 "연구회는 그 동안 개발한 협상수업 프로그램과 자료집, 지도안 등을 엮어 협상교육 서적을 내고 교사 대상 연수를 통해 협상교육 지도자 배출에도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