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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창업으로 가는 길목에서

 청년들의 소득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깊어지면 빈곤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빈곤은 모든 것을 슬프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잡지 못해 힘든 세상이 되어 힘든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젊은이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야놀자’는 모텔, 펜션 등 숙박업소 예약 앱으로 유명한 벤처회사다. 누적 회원 340만 명, 앱 내려받기 횟수 1000만이 넘고, 하루 평균 5만 명이 이용한다. 2014년 연매출 200억 원을 달성한 데 이어 지난해엔 그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직원도 200여 명에 이른다. 투자회사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는 야놀자의 기업 가치를 2000억 원으로 평가하고 지난해 7월 100억 원을 투자했다.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 등록된 숙박업소는 5만여 개, 객실 200만 개에 이른다. 현재 야놀자와 업무제휴를 한 곳이 7700여 곳이니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게다가 ‘코텔’이라는 신개념 숙박업소 직영을 시작했고, 프랜차이즈 사업도 확장 중이다.

창업 10년 만에 성공 신화를 일군 ‘야놀자’ 대표가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여섯 살 때 어머니가 개가해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이 돼서야 담임선생님 도움으로 겨우 한글을 깨쳤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잘못된 길로 빠져들기 쉬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방황하는 것도 사치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빨리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공고와 공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취직했죠.”

그는 재테크 서적과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돈 벌 방법을 찾았다. 선택한 것은 직장생활 3년 동안 모은 전 재산 4000만 원을 털어 주식 투자를 하다 모두 탕진했다. 잠잘 곳도 없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원양어선을 타거나 모텔에서 일하는 것뿐이었다. 3년 동안 모텔에서 먹고 자며 모은 돈으로 샐러드 배달업을 시작했지만 6개월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다이어트와 채식이 유행이라 승산이 있을 거라 확신했는데 착각이었다. 다시 모텔로 돌아왔다. 청소하고, 시트 교체하고, 손님 받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에 ‘모텔 종사자 모임’이란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를 운영하며 숙박업소와 물품 납품업체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하면 되겠다고 판단한 그는 학교 후배 등과 함께 5000만 원을 투자해 물품 견적 서비스 창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했다. 대부분 업소에서 기존 거래처를 바꾸려 하지 않았던 것 때문이다.

그는 고백하고 있다. “연달아 실패를 겪으면서 난 뭘 해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2005년 3월 1일 ‘모텔투어’라는 모텔 소개 카페를 운영하던 운영자가 그에게 양수를 제안한 것이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한 그는 카페를 인수하고, 서울과 근교 모텔촌을 돌아다니며 광고 영업을 했다. 1년여 만에 첫 유료 광고가 성사됐다. 모텔 내부 사진과 함께 다양한 정보를 올리고, 회원들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하며 홍보에 전력했다. 카페 회원에겐 모텔비 할인, 체크아웃 시간 연장 등의 혜택도 제공했다. 카페에 첫 유료 광고를 올린 모텔에 손님이 몰리자 광고를 하겠다는 모텔들이 늘어났다.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직원들이 전부 경쟁사로 옮겼다. 새로 개발한 카페 플랫폼까지 들고 갔다. 게다가 사용하던 이름마저 경쟁사에서 먼저 상표권 등록을 해버려 쓸 수 없게 됐다. 이름을 바꾸면 신생업체나 마찬가지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들 “망했다”고 했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2006년 10월 ‘야놀자’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시작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었기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견뎠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렇게 버틸 때마다 조금씩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실패 뒤 ‘내가 잘 아는 걸 해야 한다’ 고 깨달았다.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그는 성공 원인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꼽았다.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안 하면 성공도 없다. 취직이나 창업을 안 하고 그냥 있어도 배는 고프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똑같이 배는 고프지만 참고 계속하다 보면 전문성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뭔가 먹을거리가 생긴다는 생각때문다. 그때 누군가 도와주기도 한다. 성공한 창업자들을 보면 대부분 버티다 보니까 투자도 받고 결국 성공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흙수저’니 ‘삼포세대’니 하며 자조하는 청년들에게 할 말이 많다. “대학생이나 젊은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취업이 안 돼 힘들다, 돈이 없어 결혼을 못 하겠다, 맡길 데가 없어 아이를 못 낳겠다…. 그렇다고 조건 다 갖추고 결혼하고 아이 낳으려면 너무 늦어요. ‘나도 돈이 없었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 낳아 잘 키우고 있다’고 하면 대부분 ‘사장님은 다르잖아요’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금 청년들보다도 더 가진 게 없었고, 더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혼하니까 책임감이 강해지고 아이가 생기니까 더 강해졌다.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생겼다."고 자랑을 한다. 스스로 극복해나가야지 포기한 채 사회구조 타령만 하고 있으면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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