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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육은 줄다리기

“교감 선생님! 우리-.”
“숨 한 번 쉬어라.”
“씩씩-.”
“우선 진정부터 하고.”
“화가 나요. 화가.”

교육 연구실의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서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표정을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어린이는 감정 조절이 안 될 정도로 흥분이 되어 있었다. 숨을 제대로 쉬어지지가 않아 씩씩거리고 있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 참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이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흥분이 모든 것을 막아버리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노의 불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질서를 상실한 채였다. 속에서는 분노의 화산이 쉴 사이 없이 분출하고 있었다. 분출의 속도가 간헐적이라면 흐트러진 질서를 어떻게 수습할 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출이 쉴 사이 없이 터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공중분해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기박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파악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아이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은 급선무였다.

흥분을 가라앉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다. 우선 숨을 깊게 들이마실 수 있게 해주는 방법뿐이다. 그렇지 않고는 아이의 흥분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숨 쉬기 운동을 몇 번이나 하였을까? 조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흥분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니, 대화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보통의 아이들하고는 조금 달랐다.

흥분이 진정이 되니, 합리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흥분이 진정되었어도 분노는 조절이 되지 않았다. 참으로 난감하였다. 분노 속에서 간헐적으로 말하는 아이의 요지는 담임선생님이 싸운 아이 편만 든다는 것이었다. 그 것이 분노의 원인이었다. 용납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 생각만 하면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씩씩거리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참 난감해졌다. 흥분이 가라앉으면 정상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다. 정상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면 문제의 원인을 공동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원인을 찾는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아이와 함께 찾아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 아이하고는 이런 과정을 진행시킬 수가 없었다. 정상적인 대화가 진행할 수 있어도 분노 조절이 되지 않으니, 문제의 원인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런 아이는 처음이었다. 벽에 부딪친 것처럼 답답하였다.

분노 조절 장애. 스스로 분노를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통제하려고 노력하여도 치솟는 분노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분노 조절의 정도가 장애에 이를 정도로 심각할 때 ‘장애’라는 말을 붙이게 된다. 장애라는 말이 뒤에 붙게 되면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의 행동을 단 한 번 보고 장애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혹스럽다. 대처 방법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럴 때의 관건은 인내력이다.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내력을 가져야 한다. 아이가 분노를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 답답한 아이의 태도를 힐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이가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 정도로 들어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편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말을 들어주고 있는 선생님만큼은 자신의 편이란 사실을 스스로 의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문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인내의 시간을 감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면서 반박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는 일이 가장 어렵다. 지도하는 선생님의 의견은 아이에게 절대로 중요하지 않다. 아이의 말을 그대로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말이 옳다고 믿어주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담임선생님은 믿을 수 없어 야기된 분노였다. 그렇다면 담임선생님과는 달리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선생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이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럽다. 길고도 먼 시간이었다. 고비가 수없이 많다. 그 모든 봉우리를 넘어서야 하였다. 겨우 분노 조절이 가능해졌다.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문제의 원인을 함께 찾아낼 수 있었다.

문제의 원인이 된 아이까지 데려다놓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인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의자 돌리기 놀이를 하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시니, 모두 자리에 앉아야 하였다. 그 때 자신의 의자를 다툼이 야기 시킨 아이가 가져가 앉았다. 화가 나서 왜 자신의 의자를 가져갔느냐고 다툼이 일어났다. 선생님은 싸움을 보고는 둘을 떼어놓기 위하여 상대 아이를 격리시켰다. 그 것을 보고 선생님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분노한 것이었다.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지만 아이에게는 분노 조절이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던 것이다. 아이의 편을 들어주면서 다독거렸더니, 헤 웃었다. 분노조절 장애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초였다. 지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교육은 줄다리기. 이를 바라보면서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아이를 지도한다는 것은 인내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게 된다. 아이의 생각이 중요하다. 지도하는 선생님의 생각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믿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사랑을 받는 아이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랑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지도하였어도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지도는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교사가 해야 할 일이다. 아이가 멀리 도망을 치려고 하면 잡아당겨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반대로 아이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조심스럽게 제자리로 밀어내는 일이다.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에 정답은 없다. 사랑으로 인내하며 아이의 생각을 알아내는 일의 과정이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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