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인데도 해맑은 웃음으로 인사하면서 등교하는 아이를 만났다. 이 학생은 항상 일찍 등교한다. 교실에 들어가 창문을 열고 다음에 오는 친구들을 기다린다. 하루 아침에는 물었다. 학교에 오는 것이 즐겁냐고? 즐겁다는 것이다. 그래? 뭐가 그렇게 즐겁냐고 또 물었다. 친구들 만나 공부하고 이야기 하고 급식 먹고 가는 하루가 즐겁다는 것이다. 이렇게 즐거운 아이들이 과연 우리 학교에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다. 정확한 비율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상당수의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즐겁게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가 여기까지 이렇게 굴러 온 과정 속에 선생님들의 사랑과 열정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무렵 학교에 해가 뜨는 시각은 7시 반을 넘어서고 있다. 어떤 선생님은 여름 시간이 아닌 지금도 7시만 되면 연구실의 불을 밝힌다. 이제 습관이 된 것 같다. 하루 시작을 연구로 시작하는 선생님의 가슴에 어떤 기대가 들어있을까 궁금하다. 그렇지만 하루의 일과를 준비하면서 수업을 향한 열정이라 생각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누구나 인간에겐 되고 싶은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 그것이 방해되고 여건이 안 되어 이루지 못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되면 포기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가 아는 한 의사의 고백이다. '원래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소설가였다. 그리고 그 다음 꿈은 철학가였다. 그런데 이러저러하게 의대에 들어온 후 나 역시 결과적으로 뭔가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좋은 병원에서 레지던트가 된다면, 미국에서 괜찮은 대학에 가서 MBA가 된다면, 내 병원이 있다면, 책을 낸다면, 방송에 나간다면 나는 내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주는 희열은 항상 잠시 뿐이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오히려 우울함이 밀려들고는 했다. 뭔가 생각한 것과는 항상 달랐다. 그러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야 더 이상 뭔가를 이루면, 뭔가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는 본능의 속삭임에 더 이상 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필자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다 이것은 바로 재미다. 같이 일하는 직원, 만나는 사람과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쌓여서 결국 재미있는 인생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결국 우리는 제한된 시간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마음에 있지만 송창식 씨의 노래 가사 중 일부처럼 “노래하고 술 마시고 춤만 추다보면” 나중에 시간을 헛되게 보낸 대가로 불행에 빠질 확률이 올라간다. 절대 가난에 빠져 절망의 늪에서 재미를 노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재미있게 사는 것은 맞지만 최소한도 절대 가난에 빠지면 안 된다. 돈이 없고, 사회적 지위가 너무 보잘 것 없어진다면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고 분노가 축적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열등감처럼 인간을 보잘 것 없게 만드는 것이 없다. 자신보다 우월한 이를 부러워하지 않는 인성을 타고 태어난 복 받은 이도 별로 없다. 그리고 고령화 저성장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에서 지금 미래를 살아갈 역량인 자산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어떻게 살게 될지 불안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공부를 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외침이 아이들에겐 피부로 다가오지 않는다.
불안을 떠안고 재미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안을 어느 정도는 일단 줄여 놓아야 재미를 찾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게 산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 결국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갈등하다 힘들게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권태, 타락의 나락을 빠뜨리는 쾌락과 인생의 참 재미 사이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것 하나 만큼은 틀림없다. 재미없는 인생은 삶이 아니다.
지금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이 공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할 때 내가 나 자신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내일 죽게 된다면 지금 이 일을 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후회할까 후회 안할까?” 죽음의 순간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아주 가끔씩 나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오래 전에 사두고 보지 못한 책, 읽었지만 다시 보고 싶은 책을 꺼내어 읽기도 한다. 이는 내 스스로 재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이다. 재미없는 인생은 살아있는 순간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다. 결국 재미있는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자각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