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어린 시절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학교로부터 정기적으로 수급품을 타 먹어야 하고, 아버지는 난쟁이에다 꼽추이며, 젖먹이 시절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 어머니는 필리핀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는 누가 보더라도 참으로 완벽하게 불우한 환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속의 완득이도 한때 갈등을 빚었던 담임선생님인 동주에게 스스로를 조롱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완득이처럼 비참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 ‘완벽하게 불쌍한 아이’는 장차 어떻게 될까?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보면, 아마도 불량 청소년이나 범죄자가 되기 십상일 것이다. 얼핏 보면 완득이 역시 그런 정해진 수순을 밟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완득이는 원천적으로 비뚤어질 수 없는 아이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불량 청소년은 완득이와는 달리 어른, 나아가 사회에 반항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로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반해 어른들을 대하는 완득이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공손하고 우호적이다. 완득이가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공손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완득이의 아버지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덕적이며, 성실하고 용감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완득이가 궁극적으로는 엇나갈 수 없는 이유, 착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완득이의 아버지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완득이가 백방으로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술에 취한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가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완득이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자 평소의 무뚝뚝함을 벗어던지고 온화하고 다정한 태도로 아들을 대한다. 그는 아들의 등에 업힌 채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뇐다. “멋있다, 우리 아들, 완득이, 우리 아들, 멋있다. 멋있다…….”
이 장면은 감동적이다. 부자간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한마디로 완득이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좋은 아들이었다. 그와 아버지의 관계가 건강했다는 것은 완득이가 화내지도 주눅들지도 않으면서, 아버지나 어른들에게 항상 자기가 할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와의 좋은 관계는 단지 그것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어른들과의 관계에도 두루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아버지에 대해 좋은 감정을 품은 자식은 어른들, 특히 남자 어른들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 전이’ 때문이다. 과거에 경찰관에게 큰 도움을 받아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사람이라면, 길을 가다가 제복을 입은 다른 경찰관을 만나도 미소를 지어보이거나 일부러 다가가서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는 등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것은 과거 특정한 경찰관에게 가졌던 좋은 감정이 다른 경찰들에게 옮겨가거나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완득이가 단지 아버지뿐 아니라 동주 선생, 킥 복싱 체육관 관장 등에게 일관성 있게 우호적이고 공손한 태도를 보인 것, 그들의 충고를 사심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아버지에 대한 좋은 감정 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로 보아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온전히 수용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완득이는 행복하다. 가혹한 현실의 무게, 그리고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가난에도 착하고 바르게 살고 있는 어른들의 보살핌이 있다면 완득이 같은 행복한 아이는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 이는 심리학 측면에서 보아도 분명한 진실이다. 행복과 불행은 물질이나 돈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만일 행복하지 못하다면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화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즈음 아버지가 휘두른 폭력이 무서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집을 빙빙 돌면서 전전긍긍 하는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도 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일이다. 어린 딸이 집을 나가 소식이 없어도 찾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 학교에서 경찰에 신고하겠다니 그때에 학교에 와서 사정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의지할 데 없는 아이들, 이같은 상황이 되면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학교의 선생님이다. 그러나 선생님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들을 해결할 에너지가 없어지게 된다. 이 에너지가 회복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학교장의 중요한 책임가운데 하나임을 느끼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