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이라면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많은 선생님을 만나면서 성장해 간다. 세상에는 많은 것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 선생님이었다. 어쩔수 없이 선택이 안된다면 잘 받아 들이면 약이 되고, 이를 잘못 받아들이면 도움이 안된다. 그러나 그것이 주관적인 마음의 판단에 의한 작용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사소한 것 일수도 있고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경우도 있다. 얼마 전 필자의 고교시절 역사 선생님이셨던 분이 전화를 걸어 오신 것이다. 사실 내가 역사 교사가 된 것은 그분 덕분이다. 고등학교 시절 그 선생님의 수업은 나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난 그분을 찾아 전직을 위한 시험에 관한 자문을 얻은 기억이 있다. 사실 그분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어찌 그런 경우가 나 혼자만의 경험이겠는가!
고등학교 시절 담임은 체육교사였다. 이 소식을 접한 친구들과 일부 학부모는 ‘어떻게 문과 수험생 담임을 체육선생에게 맡기냐’고 우려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선생님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면학 분위기를 다 잡고, 진학지도 경험이 있는 동료 교사에게 열심히 배워가며 1등부터 꼴찌까지 60여 명이 넘는 학생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챙겼다. 특히 아침조회 등으로 운동장에 모일 때는 학생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워서 어느 학생이 오지 않았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들은 놀라게 된다.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 채리니 아이들이 선생님 관심 영역에서 빠져 나갈 길이 없는 것이다. 대입 예비고사 때까지 방학 중 보충수업에 빠지거나 가출한 아이들이 아무도 없어 다른 반 선생님들이 그 비결을 물을 정도였다.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어린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름대로 앞에 서 있는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 거의 간파한다. 부모의 지위나 가정환경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하고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교사인지, 매너리즘에 빠져 대충 가르치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 내키는 대로 감정을 토하면서 학생을 대하는 교사인지, 매를 때려도 애정이 느껴지고 진정으로 학생과 학교를 위해 애쓰는 교사인지를 다 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인식이 부족하다면 아이들이 비춘 거울을 보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교사가 어린 학생들의 의식과 정서에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기에 초·중·고 학부모 대부분이 새 학년 초마다 어떤 교사가 자녀의 담임을 맡을지 관심이 많다. 또 교육 열심인 일부 지역에선 학부모들 사이에서 ‘기피 교사’를 뜻하는 블랙리스트가 돌아다니는 학교도 있단다. 서글픈 현실이다. 열악한 교육 인프라와 갈수록 추락하는 교권, 잡다한 행정 업무 등에 치인 교사들도 하소연할 게 많을 거다.
교사하기 힘든 환경이지만 학생 하나하나와 소통하고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어 주는 선생님들이 넘쳐날 때 우리의 교육이 살아나고 제자리를 찾을 것 같다. 자신이 행복감이 없는데 아이들을 하나하나 보살필 여유는 생기기 어렵다. 가르치는 것이 행복한 선생님은 항상 긍정적이다. 이런 선생님이야말로 제자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바르게 건강한 길로 갈 수 있도록 불철주야 고민한다. 이렇게 노력하시는 선생님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직은 소명의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우리 교육의 희망은 현장의 선생님들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행복교육을 외친다 할지라도 이 열쇠는 선생님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평안을 느끼고 행복한 선생님만이 행복 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 이런 선생님이 많은 학교는 행복한 학교이다. 더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행복을 만들어 내는 행복한 선생님이 되도록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