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자연과 더불어 인간들이 조직을 이루며 질서를 유지해 간다. 철학자들은 함께 어울리고 더불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에 따라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의 세 부류가 그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20년이 넘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 받는다. 그러면 꼭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인간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교육은 ‘이기는 기술’을 가르치는 데 집중한다. 가정교육도 그런 방향으로 치중된다. 그래서 과외를 하는 등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지만 이것이 교육의 큰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동물들도 학습을 한다. 어미는 새끼를 보살피며 먹이를 찾는 기술이나 먹잇감을 잡는 기술을 가르친다. ‘생존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생존의 기술’은 각 개체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이지 무리가 더불어 살기 위한 기술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배우는 ‘이기는 기술’은 오직 자신이나 가족을 위한 것에 머무를 수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저 열심히 하여 남자 친구와 해외여행 가고 부모님을 편하게 해 드리겠다는 것이다. 조금더 이를 확장하면 남들은 어찌 되거나 나만 잘 되려는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도 ‘더불어 사는 기술’을 배우는 데는 소홀하다. 진정한 가치를 지닌 ‘꼭 필요한 사람’은 더불어 사는 기술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
‘이기는 기술’을 터득한 사람은 인재라는 말을 듣고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그래서 경쟁에 유리하며 대체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선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유능한 사람은 자신의 ‘이기는 기술’을 믿기 때문에 자신감에 차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항상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자 한다. 따라서 승진에서 탈락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면 견디지 못한다. 자신의 노력 또는 공로가 인정을 받지 못하면 크게 실망한다.
그러한 불만들이 쌓이면 ‘여기 아니면 내가 일할 데가 없는 줄 알아?’ 하며 직장을 옮기거나 독자적으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심한 경우는 자신이 관여했던 핵심 기술을 불법적으로 빼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문제가 생긴 조직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안지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에 의존하고 핑계대기를 좋아한다. 한마디로 뛰어난 인재들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만큼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짐 콜린스 교수는 ‘진정한 인재는 일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최근의 혁신적인 기업들은 책임감이 부족하고 이기적은 유능한 인재들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기업들은 이른바 화려한 ‘스펙’에 집착하지 않는다. 최근 어느 조사를 보면 CEO의 80%가 유능한 인재보다 ‘잘 노는 사람’을 뽑는다고 했다. ‘잘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게으르다거나 혼자 술집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바람직한 분위기를 만들고 더불어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 전산은 그들의 성공스토리가 책으로도 소개되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업이다. 어려울수록 더욱 강해져 불황 속에서도 열 배나 성장한 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 전산이 더 유명해진 것은 나카노리 사장의 독특한 직원 채용 방식 때문이다. 몇 가지만 소개해 보면,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한다.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감 있고 실수를 했을 때도 반성이 빨라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을 뽑는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은 일하는 것도 빠른 특성과 연관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화장실 청소를 시켜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뽑는다. 일을 미루지 않고 해내는 습관과 스스로의 일에 책임지는 습관 등을 살핀다. 또 오래 달리기를 시켜 빨리 달리거나 일등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는 사람을 뽑는다. 물론 이러한 시험 종목들은 해마다 바뀐다고 한다. 결국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필요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
유능한 사람은 직장 생활뿐 아니라 대인 관계에서도 자기 중심적이다. 우월감을 가지고 필요성을 따져 모임에도 잘 빠진다. 이해 타산이 빨라 희생과 헌신을 회피한다.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인간관계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남들도 그를 달가워하지 않고 싫어하게 된다. 스스로 비호감 인간으로 전락해 가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기는 기술’보다 ‘더불어 사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다. 인간미 넘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나서는 사람, 궂은 일을 도맡고 나서는 사람이 호감을 주는 사람이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학교교육을 통하여 이같은 인간을 기르고 싶기에 오늘도 교단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