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19일 오후 2시 서울동부지법 1호 법정에서는 '전국 1등'을 강조하는 어머니의 강요를 이기지 못해 결국 살해하고, 시신을 반년 넘게 방치하여 존속 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학생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첫 공판이 열렸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그 뿌리는 가정 교육의 부재에 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아이들과 연관된 세간의 사건 대부분이 그러하다.
교복 차림의 지군은 단정한 머리에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에 출석하여, 겉모습은 말쑥한 모범생으로 비쳐졌지만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피고인석에 앉아 수갑을 풀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재판 내내 그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고 언론매체는 전하고 있다. 지군의 아버지 지아무개(53)씨는 "모든 것이 절망에 빠진 아들 옆에 있어주지 못한 저의 잘못"이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통곡해 법정을 숙연하게 했다니 이같은 부모의 마음을 당사자 외에 누가 알겠는가?
증인 심문으로 나온 A씨는 "언니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랐고 이를 남편에게 보상받으려 했으나 남편은 밖으로 돌았고, 결국 아들만을 믿고 살았으나 아들 손에 저 세상으로 간 불쌍한 사람"이라며 흐느끼는 모습이었다. 검찰 측은 피해자의 여동생 A씨를 증인으로 신청했고, 변호인 측은 지군의 아버지, 고모, 고3 담임선생님, 친구 등 6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같은 사건은 일본에서도 일어났고, 한국에서도 일어났는데 공통점이 부모의 아이에 대한 지나친 '공부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한 아이를 인격체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부모의 대리충족을 위해 인격적 생명체가 아닌 단지 공부하는 기계 수준의 관점에서 본 것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다. 부모가 조금만 더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면 얼마든지 이같은 불행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닐런지!
현대의 불행은 가정교육의 부재에 있다. 문제가 있는 곳에는 매사에 지나치게 욕심이 앞서고 고뇌가 없고 자기의 유익만 생각하며 진실이 없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아이들은 매사를 통하여 자극을 받고 이를 몸에 익히게 된다. 공부는 단지 교실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보는 것이 공부요, 느끼는 것 모두가 공부이다. 오직 시험 점수만 강요하는 주술적 교육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성은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지적지표의 실력보다 더 중요한 진짜 실력이다.
이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인류의 고전인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고 명령한다. 자녀에게 물려줄 최대의 유산은 건강 유산이다. 한마디로 하면 영적, 정신적 신체적 차원을 포괄한 총체적 건강이다. 필자는 학부모님과 시간을 가질 때마다 사춘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공부만 하라고 졸라대지 말기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사춘기는 자기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반항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항 심리로 인하여 공부를 하지 않는 행동을 통하여, 공부하라 명령하는 부모에게 원수를 갚으려는 인간의 심리가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용장 밑에 약졸은 없는 법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부모 밑에 허약한 아이가 있을리 없다. 운동을 즐기는 아버지를 둔 자녀들이 운동의 묘미를 알뿐 아니라 스태미너가 넘친다. 아름다움을 가꿀줄 아는 엄마를 둔 딸들은 맵시를 낼 줄 안다. 멋지 아빠에 멋진 아들, 현숙한 엄마에 현숙한 딸이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부전자전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스스로 모델이 되어 바른 습관을 가지게 하는 것이 바른 가정교육이다. 이 시대의 불행과 비극은 총체적 건강의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병든 인간과 병든 사회를 치유하려면 건강한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의 자녀를 '그 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 우리 지역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며,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