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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왜목마을 찍고 필경사 돌아

사실은 진작 나섰던 길이었다. 2년 전 5월 어느 일요일 시 쓰는 제자와 더불어 해 지고 해 뜨는 왜목마을을 찾아 나섰던 것. 그러나 고속도로를 꽉 메운 차량들에 질려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다음 기회는 2년 6개월 만에 찾아 왔다.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왜목마을인지라 식사나 하자며 만난 동료를 설득한 셈이었다. 마침 마냥 푸르고 높은 하늘이다. 마치 이 르포를 축복이라도 해주는 것 같다. 오랜만에 맛보는 자유롭고 상큼한 여행이다. 

왜목마을(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은 군산에서 2시간 거리다. 서해안인데도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관광 명소가 됐다. 그러니까 동해안 일출과 서해안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신비한 세계인 것이다.

바다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누워 있는 사람의 목처럼 잘룩하게 생겼다해서 ‘왜목’이라 불렀다. 또 지형이 왜가리 목처럼 길게 생겨 ‘왜목’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육지가 동쪽을 향해 튀어나와 길게 돌출된 덕분에 서해안인데도 해 뜨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뒷산격인 석문산에 올라 보면 장엄한 일출이란다. 

하지만 그것은 숙박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선착장, 갯내음, 갈매기떼, 붐비는 사람들, 그로 인한 치열한 삶의 현장 같은 느낌으로 만족해야 했다. 참 이상도 하다. 뭔가 막 떠올라 시 ‘은하’를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은하

  5년만 더 살고 싶다던 어머니는
  1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꿈에서 본 적 없는데

  금방 뭍에 오른 수부(水夫)가
  파시곶 니나노집 찾듯 은하는
  꿈에 생생하기만 하다

  은하수 건너편 은하 보러 간
  해뜨는 마을은, 해지는 마을은
  어쩐 일인지 갯내음조차 없건만
  삶의 현장으로 넘쳐난다

  갈매기 날개짓 하도 요란해서인가
  역시 은하는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 꿈에서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
  마음 설레게 했던 은하는
  그 긴 혀만 쏙 내민다

  사진에도 사람 감정이 스민다는데
  감정이란 놈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쑥쑥 자라는 생물인 줄은 미처 몰랐다
  은하가 밤에만 잠깐 빛나는 별인 줄
  나는 이제야 알았다

  가까운 곳 칠흑 같은 밤에
  은하수 가까이 다가가 은하인
  별을, 섹시한 별을
  보고 싶다, 따고 싶다.

마냥 감상에 젖어 있을 수는 없었다. 과문불입(過門不入). 왜 그때 이 말이 떠오른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돌아가는 길 송악IC 인근에 ‘필경사’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채영신이 동혁과 사랑을 나누며 농촌계몽활동을 펼치는 장편소설 ‘상록수’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필경사(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는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이다. 심훈(1901~1936)이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기념 현상공모 당선작 ‘상록수’를 집필한 곳이다. 장편 ‘직녀성’ 연재 원고료로 심훈이 직접 설계하여 지은 예전 촌의 전형적인 초가 모습이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니 둥그런 뿔테 안경을 쓴 심훈이 우릴 반긴다. 제법 큰 초상화 옆에 5장의 나이별 사진이 연보와 함께 걸려 있다. 유리장엔 유품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약간 좁은 듯하지만 여느 문학관과 다름없는 진열이고 장식이다.

필경사 방문으로 새로 알게된 사실이 있다. 소설 ‘상록수’·‘직녀성’·‘영원의 미소’, 시 ‘그 날이 오면’ 등 문인으로만 기억해오던 심훈이 영화인으로도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심훈은 1920년 후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비평, 각색·감독, 심지어 주연배우까지 영화인으로 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문학제가 아니라 문화제이다. 1977년 시작하여 매년 ‘상록문화제’(9월말에서 10월초)가 열리고 있는 것. 뜻깊고도 장한 일이다. 그 못지않게 장한 건 왜목마을만 가리라 생각하고 쾌히 따라나섰던 동료의 심훈을 애써 이해하려는 듯한 밝은 미소이다.

은하수 별을 보고, 서해안 일출도 보려면 하룻밤 묵어야 하지만, 그때 하필 세상 일이 맘대로 다 되지 않는다는 진리가 떠오른다. 그것이 무슨 조화 속인지를 떠올리며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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