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TV에 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다시’라고 말한 것은 2009년 ‘선덕여왕’(MBC) · ‘천추태후’(KBS) · ‘자명고’(SBS) 등이 ‘범람’했지만, MBC ‘동이’를 끝으로 지난 해 하반기엔 ‘근초고왕’(KBS)만이 새롭게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것이 올해 하반기 들어선 ‘무사 백동수’ · ‘공주의 남자’ · ‘계백’ · ‘광개토태왕’ · ‘뿌리깊은 나무’ 등이 방송되었거나 되고 있는 중이다. 금요일만 빼곤 일주일 내내 사극과 만날 수 있게된 것이다.
시청자들로선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할 수 있지만, 방송사 간 사극의 시청률 경쟁은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10% 전후의 그만그만한 시청률에서 보듯 ‘제 살 뜯어먹기’가 될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정통 대하사극보다 소위 퓨전 등 야사극 따위가 재미를 무기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문제다. 물론 드라마를 통해 역사 공부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청소년들에게까지 노출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는 있다.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지나친 사실(史實) 왜곡으로 인한 혼란이 유해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6일 종영된 KBS ‘공주의 남자’ 24부작도 그런 사극 중 하나이다. 일단 ‘공주의 남자’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배합한, 이른바 팩션의 힘을 보여준 드라마라 할만하다. 마지막회 24.9%(AGB닐슨미디어리서치) 등 수목극 시청률 1위의 드라마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7월 20일 방송을 시작하며 ‘공주의 남자’가 표방한 주제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불멸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정통 대하사극은 아닌 셈이다. 거의 대박 수준의 인기를 끈 것은 그 때문이지 싶다. 그것도 불구대천의 원수임이 확실한 역사 속 수양대군(김영철)과 김종서(이순재)의 딸 세령(문채원)과 아들 승유(박시후)의 사랑이니 말이다.
위기 속 사랑을 안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 짜릿함, 그 애절함 등을. 안해본 것이기에 시청자들로선 궁금해 한다.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동정하고, 마침내 그들의 ‘천륜을 어긴’ 막돼먹은 사랑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 과정을 밀도있게 잘 그려낸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정이란 아무 망설임도 없이 서로의 삶과 죽음을 허락하는 것”이라는 대사의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주인공을 죽이지 않고 살려 ‘완성된 사랑’이 되게 한 것도 진일보한 연출로 보인다. 사랑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비극 속에서 참으로 어렵게 이뤄내는 사랑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세령 역 문채원의 실연(實演)도 기억해 둘만하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고 문채원이 그랬다. 세령은 아버지와 연인 사이에서, 결국 연인을 택하는 ‘특수한’ 캐릭터다. 여인의 내면심리와 행동 외양을 표현해내기가 만만치 않은 캐릭터인데, 그걸 소화해냈다. 문채원은 방송 내내 너무 예쁜 모습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나라를 뒤엎는 큰일을 아내와 상의하는 수양이라든가 김종서를 죽이러 간 시간이 자시(밤 11~1시)인데 너무 환한 길거리, 언젠가부터 사극에 양념처럼 등장한 ‘아랫것들’의 상전 꾸지람,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승유의 대낮 활보,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에 대한 ‘아버님’ 호칭 등이다. 말할 나위 없이 그것들까지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