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음과 함께 화면이 흔들렸다.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건물이 과자부스러기처럼 주저앉았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아우성을 친다. 순간 시계가 멈추었으면 싶었다. 더 이상 최악의 순간이 없기를 바라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과 함께 통곡소리가 공중을 맴돌았다. 괴성에 가까웠다. 부서진 건물 잔해에서 주인도 없는 신체 일부가 나뒹굴었다. 그런 중에도 제 혈육을 찾는 손길은 끊이질 않았다. 21세기 들어 최대의 대형 참사라 한다. 공포가 진드기처럼 그 곳에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방송은 연일 아이티 소식으로 도배하듯 했다. 나라가 위급한 상황인데도 대처 능력이 전혀 없는 정부가 입에 올랐다. 특파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빈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끊이지 않는 내전과 함께 내 배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관료들의 무개념이 매스컴의 밥상 위에 덩그렇게 오르는 순간이었다. 망국을 재촉한 무리가 나라를 이끌었다는 것이 허투로 봐 지지 않았다.
사상자가 늘어갔다. 길바닥에 드러누운 시신들이 갈 곳이 없어뵈는 현장을 보다 인간의 이기심을 확인했다.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죽은 자 곁을 서성이며 먹을거리를 찾고 있는 부류들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죽은 자에 대한 애도 그 너머에 식욕이 목을 디밀고 나와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의 본능이란 것을 인정하면서도 입맛이 썼다. 용케 먹거리를 구한 사람은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비수를 휘두르기까지 했다. 구호물품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신경전이 이제는 생과 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지경에 까지 다다른 듯 했다. 눈에 어린 살기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세계인들은 호주머니를 열었다. 이렇다하는 국내 스포츠 스타들도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자신이 그 위치에 오르는데 든 투자금을 생각하면 한 푼도 아까울 일이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실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어린 나이의 선수가 억대의 성금을 보냈다는 소식은 훈풍으로 다가왔다.
우리 정부도 UN에 100만 달러를 약속했다고 한다. 이 금액은 과거에 직접적으로 수많은 나라로부터 은혜를 입은 나라로서 내놓을 액수로는 아쉬움이 많았다. 더욱 놀라운 소식은 이렇게 힘들어하는 아이티가 지난 6.25전쟁 당시에 우리나라를 도왔다고 한다. 사실 그 나라가 당시에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으며 얼마만큼의 원조 또는 지원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부끄러웠다.
물론 경쟁적으로 마구잡이식의 원조를 해 주자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추호도 아니다. 단지 지원을 받았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제는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자는 속엣 이야기를 하고 싶다. 외국에서 공사를 따내며 경제적인 동물의 모습만 보여 주기보다 세계의 일원으로서 성숙된 모습을 후손들에게 아니 세계에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가의 위신을 위하여 허장성세를 하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국가의 경쟁력과 경제력을 생각한다면 그에 알맞은 우리의 도리를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따름이다. 다행히도 국민들이 나서서 구호금품을 거두고 위문금을 내놓자 정부는 뒤늦게 1100만 달러를 더 약속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나마도 위로는 되었지만 여운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동화 속 이야기가 생각난다. 은혜 갚은 까마귀의 이야기다. 하물며 말 못하는 짐승들도 제가 입은 은혜에 대한 도리를 하지 않던가. 물론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 어른들이 잊고 사는 진리가 쟁여있다. 보은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실천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넣어두고 되새김질해야할 덕목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세상 사는 진리를 책 속에 넣어두거나 백설 공주처럼 대책 없이 잠들어 있게 하지 말고 왕자님의 용기와 기개를 안고 세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도록 하는데 주저가 없어야 한다.
아이티 문제를 정부차원의 인색함과 연결해서 생각하다 혹시 이런 경색된 처신이 우리들의 감정선으로 굳어진 것은 아닐까 걱정됐다. 건전한 인간성을 가진 후손들이 나올 수 있도록 통 큰 우리가 되었으면 싶어서다.
이런 아쉬움에 젖어 있던 중 우리 대통령이 스위스의 다보스 포럼에 20여명의 외국정상과 국제기구 수장이 참여한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행사의 성격은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2010년의 화두에 대해 난상토론을 하는 자리라고 한다. 더욱 놀랐던 일은 우리 대통령이 개회연설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 소식은 우리나라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갑자기 이것이야말로 국격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격은 중요하다. 그 중요한 국격은 이미지나 이벤트로, 혹은 선전과 홍보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음으로 양으로 세계인을 향하여 내미는 손길이 따라야 하는 묵계가 뒤에 있다. 하물며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수혜국이던 우리가 질곡의 그 뒤안길을 벌써 잊는다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다. 우리의 대표자가 이런 대접을 받도록 주변이 우리를 인정하는 오늘이 아니던가. 이에 나누는 연습이야말로 우리나라의 혼과 격을 높이는데 즉효약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서둘러 방향을 되잡아야 할 일이다.
그러자면 주먹만한 내 심장 한 켠에 주변을 위한 일에 내 손길과 내 발길을 내 줄 수 있도록 작은 방하나 만들어야 한다. 내 아닌 다른 이의 가슴에 든 고통의 씨앗도 크게 볼 줄 아는 도덕경까지는 요구하지 않으련다. 더 늦기 전에 후손들이 한복의 옷고름과 같은 우리의 넉넉한 마음자락을 주변과 나눌 수 있도록 나누는 자세를 아니 보은의 마음자락을 유산으로 물려주자. 그것만이 영원도록 사는 방법이자, 우리가 후대에 원망을 듣지 않는 피난처다. 진즉에 했었어야할 일이지만 이제라도 묵은 빚을 갚는데 선봉장이 되도록 하자. 다시 한번 은혜 갚은 짐승들의 이야기가 뇌리에서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