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발령을 받은 이후 벌써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교사라면 누구나 첫발령의 추억은 아련하고
또 가슴 설레는 떨림으로 기억되곤 한다.
발령장을 받아들고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정선에 있는 Y중학교였다. 무더운 여름날 3교시, 한참 수업을 진행하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여기 뱀 있는데요" 하는 것이었다. "교실에 웬 뱀이야" 하면서 보니까 정말로 머리를 삼각형으로 곧추세우고 또아리를 튼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아이들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웃으며 P를 쳐다보았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구나'하고 생각한 나는 P를 다그쳤다. 얼굴이 벌개진 P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2분기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몇주 전부터 하교 후나 일요일에 뱀을 잡아 항아리에 모아두었단다.
오늘이 장날이라 점심시간에 내다 팔려고 비닐 부대에 담아왔는데 간수를 잘못했는지 그중 한 마리가 새어나온 것이다. 담임인 나로서도 야단을 치기에는 너무 황당했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나고, 얼마 전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동해안으로 직원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다. 마침 내 첫 부임지 부근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됐는데 누가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나가보니 P였다.
구레나룻이 시꺼먼 게 중학교 때의 앳된 모습은 없었지만 "선생님!" 하고 부르는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 역시 반가움으로 무척 감격스러웠다. P는 다짜고짜 나를 자리에 앉히고는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여러 선생님들 앞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멋적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제자의 깍듯한 예의라 생각하고 그 절을 받았다. 주정이 심했던 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시고 이제는 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들께서 모두 한마디씩 하셨다. "이선생님, 제자를 참 잘 두셨어요." 하면서 모두가 부러운 얼굴이었다. 초임 교사 시절, 나에게 교사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아이들, 그때의 약속처럼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건강한 삶을 열심히 살고 있을 제자들….
어느 곳에 살든 우리의 아름다운 학창시절을 오래오래 간직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