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등록금과 뱀
첫발령을 받은 이후 벌써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교사라면 누구나 첫발령의 추억은 아련하고 또 가슴 설레는 떨림으로 기억되곤 한다. 발령장을 받아들고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정선에 있는 Y중학교였다. 무더운 여름날 3교시, 한참 수업을 진행하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여기 뱀 있는데요" 하는 것이었다. "교실에 웬 뱀이야" 하면서 보니까 정말로 머리를 삼각형으로 곧추세우고 또아리를 튼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아이들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웃으며 P를 쳐다보았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구나'하고 생각한 나는 P를 다그쳤다. 얼굴이 벌개진 P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2분기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몇주 전부터 하교 후나 일요일에 뱀을 잡아 항아리에 모아두었단다. 오늘이 장날이라 점심시간에 내다 팔려고 비닐 부대에 담아왔는데 간수를 잘못했는지 그중 한 마리가 새어나온 것이다. 담임인 나로서도 야단을 치기에는 너무 황당했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나고, 얼마 전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동해안으로 직원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다. 마침 내 첫 부임지 부근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됐는데 누가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나가보니 P였다. 구레나룻
- 이규동 강원 주천중 교사
- 2003-02-15 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