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력 2년차에 담임했던 6학년 아이들을 12년만에 만나기로 한 날. 한 박자 늦은 일들 때문에 결국 약속시간에 닿지 못하고 말았다.
"선생님, 어디세요? 아이들 기다리고 있는데요. 빨리 오세요."
집 가까이에 약속장소를 정했다는 아이들의 배려가 마음으로 와닿았다. 어느 호프집 약간 어두운 조명 아래 목소리 굵직한 청년들, 고운 자태의 아가씨들이 있었다. 기껏해야 1년을 함께 한 것뿐인데 마치 내가 12년간 키워온 아이들인 양 마구 뿌듯해짐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선생님,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예전보다 조금 야위셨어요, 볼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권하고, 어색한지 눈을 잘 맞추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시험에서 꼴지반이 되었다고 차라리 내 손을 때리라고 했더라나, 내가 모르고 넘어갔기에 망정이지 알았으면 엄청 흥분했을 일들도 많았다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두시간 반이나 훌쩍 흘러버렸다. 아이들이 차로 모셔다 주겠단다. 길을 내려가며 성훈이와 종면이의 팔짱을 꼈다.
"선생님, 그 가방 사건요. 제가 무척 잘못한 것이었습니더. 흥분한 나머지 선생님 앞에서 여자아이한테 욕을 한 겁니더. 처음에는 고마 나가라 하시더니 나중에 너무 화가 났는지 가방까지 던져주시데예. 그래가꼬마 그냥 집에 갔다 아입니꺼. 나중에 한 녀석이 데릴러 왔더라꼬예. 선생님 애 참 많이 먹였습니더."
팔짱끼고 걷는 내내 성훈이가 한 얘기다.
"맘은 있어도 어찌 찾을지도 몰랐는데…선생님, 정말 좋네요."
성훈이의 따스한 마음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전해온다. 그 먼 충청도에서 달려온 종면이도 너무 반갑고. 성우는 운전석에, 준연이는 조그만 선물이라며 큰 화분을 들고 조수석에 오르고, 성훈이와 종면이가 뒷문을 열어준다. 집앞 도로에 차를 댄 아이들은 기어코 현관 앞까지 와서야 돌아선다. 이런건 가르친 적도 없는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확실히 가르쳐준 6학년 7반 아이들. 내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