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이다. 잔득 긴장하고 출근 길에 나섰지만 우려보다는 훨씬 시원한 공기가 온 몸을 휘감는다. 대서답지 않은 여름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흔들리는 느티나무 잎이 더욱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곧 시작될 여름 방학으로 학교 현장은 조금은 설레일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추억의 여름 방학은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에게나 추억이 있듯이 내게도 여지없이 회상되는 특별한 추억의 여름방학이 있다. 유난히 작아 보이는 모교의 운동장이 그리움처럼 다가오는 그런 추억이다. 추억은 숙명이다.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또는 아름답든 추하든 생물학적 접근이 가능한 것일지라도 논리적으로 감추거나 지울 수 없는 그런 숙명일 것이다.
우리들의 추억은 1967년 3월 모교인 송산중학교를 입학한 해부터 시작된다. 지금과는 달리 교통환경이 열악하여 자갈이 깔린 10여리의 신작로를 매일 걸어서 통학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우리들에게는 그런대로 도시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낭만같은 것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터덜거리며 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소금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흘리는 다양한 쇠붙이들을 모아 엿으로 바꾸어 먹던 일, 가을철 하학길에 신작로가 무 밭에서 뽑아 먹던 그윽한 가을 무 맛, 중학교 교정 뒷 산에서 따 먹던 아카시아 꽃잎의 달콤함 등의 기억은 우리들의 회상을 주도하는 소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잊지못할 추억은 까까머리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학교 법인 송산학원은 중·고등학교가 법인으로 분리되기 전이라 고등학교 선배들과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하던 시절이라 고등학교 선배들과 같이 각종 교내 활동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특별활동으로 운영되던과목별 클럽활동은 매우 다양하고 진취적이여서 체육과와 과학과 활동은 가히 수준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와 몇몇이 가입한 클럽은 과학실험반으로 고등학교 선배들의 도움으로 시·군 실험대회를 석권하고 도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 데 그 기념으로, 그 해 여름방학 과학실험 클럽 동아리엮던 우리들은 3박 4일의 현장 채집활동 기회를 영광스럽게 얻게 되었다. 우리들을 지도해 주신 정현섭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의 채집활동 장소로 광릉 수목원을 지정하셨는 데, 지금의 그 광릉국립수목원은 광릉이 있는 곳으로 한양성 100리 주변의 품 안에 주로 산재되어 있는 여러 조선시대 왕릉가운데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몇 안 되는 그런 능이 있는 곳이었다.
그 때가 1969년 8월 중순으로 기억된다. 서해안 작은 시골 학교 까까머리 중학생인 우리들이 인천의 인일여자고등학교에서 열렸던 경기도과학실험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어천역에서 동차를 타고 인천에 간 기억이며, 여장을 풀고 식당에 가서 저녁 메뉴를 선택할 때 굳이 자장면을 시켜 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그래서 자장면을 먹어본 중학생이 되어 기뻤던 일이며, 등등의 일들이 한 달도 채 안되었던 여름방학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더욱 새롭다.
이런 일도 기억된다. 실험실이 고등학교 일학년 선배들의 교실 한 쪽을 베니어 판으로 칸막이하여 마련된 곳이라서 우리들은 쥐 죽은 듯이 각종 예상 실험활동을 펼치곤 하였는 데, 한 번은 산소발생 실험을 하다가 폭발하여 선배들의 수업을 엉망으로 만들어 혼 줄이 난 적도 있었다. 그 때의 화상 흔적이 지금도 내 종아리와 팔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런 저런 과정을 고스란한 추억으로 간직된 과학실험대회가 마련해 준 생물채집 활동의 기획이기에 의미가 남다른 것이었다.
여하튼 울울창창한 원시림에서의 채집활동은 인천의 어느 중국식당에서 처음 먹어본 자장면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펼쳐진 긴 여정 시작되었다. 국민가수 조용필을 낳은 모교가 있는 송산에서 시외 버스로 수원, 수원 종로에서 서울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용산에서 종로 5가까지 시내버스, 종로5가에서 의정부까지 시외버스, 의정부에서 포천행 시외버스에 짐과 몸을 싣고 축석검문소까지의 여정은 지루하기 보다는 낯 선 세계로의 기대 충만의 길이였다.
그 곳 축석검문소에서 다시 군인 트럭을 얻어타고 광릉 수목원속으로 이동한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최근 업무차 포천이나 의정부를 다녀올 때 자주 지나쳤던 축석 검문소는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을 어머니 품 속처럼 편안하게 회상되게 하곤 하였다.
텐트를 치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농생물학을 전공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깨알같이 새카맣게 적어진 메모책을 들려주시고는 “크낙새를 보거라. 호랑나비를 찾거라. 처음보는 것이면 무조건 알아내라. 그 것이 식물이던 동물이던간에 말이다. 그리고 3일 후에 이 곳에서 결과를 발표한다.” 라고 말씀하시고는 더 이상의 지시를 접으셨다. 세 밤 낮을 그 곳에서 우리들은 들개처럼 헐떡이며, 때로는 낄낄대기도, 때로는 개울에 멱을 감으며 이름모를 물고기를 잡으며, 개구리처럼 광릉 숲을 헤매다가 3일을 허비하고는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께서는 라면을 끓여 주셨다.
“무엇 좀 알아 보았나?”
나름대로의 채집 활동 결과물을 획득물로 제시하고 눈치를 살폈지만 그 뒤 어떻게 정리되었는지가 가물거린다. 분명한 것은 그 뒤 우리들이 열렬한 선생님의 팬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광릉의 해와 달을 뒤로 하고 학교로 돌아와 표본을 만들었다.
지금은 배구로 유명한 우리들의 모교 송산! 가수 조용필을 길렀고, 배구선수 장윤창을 낳았으며, 우리들을 동문으로 품고 있는 모교의 정현섭 생물선생님께서는그 곳에서 교장을 끝으로 정년하셨다. 선생님을 뵙고 싶다. 다시 여름방학을 기대하는 학교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