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이 사회문제화된 적이 있다. 전임자에 대한 예우가 지나쳐 특혜시비를 낳는 등 일반시민들 입장에서 볼 때는 위화감과 함께 힘 센 자리에 대한 부러움, 그걸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포자기적 씁쓸함 등을 갖게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교직사회에는 전관예우가 없다. 글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냉큼 판단이 서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적어도 이 땅에서 경조사 때의 품앗이는 아직 미풍양속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벌써 9년 전이다. 어느 날 한 통의 청첩장을 받았다. 이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교장의 딸 결혼식이었다. 결혼식 날 열흘쯤 전에 받았는데, 나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빼기로 이내 작정해버렸다.
교장은 지난 9월 정년단축에 의해 3년쯤 먼저 퇴직한 상태였다. 이를테면 퇴임 후 처음 갖는 집안의 큰 행사인 셈이니 오히려 재직 때보다 더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야 하는 시골에서의 결혼식일지라도.
나는 운전하는 동안에도 전방을 주시하는 한편 작년 이맘때 있었던 결혼식을 떠올렸다. 지금 신부의 언니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결혼식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피로연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직원 수가 125명이나 되는 학교장 딸의 ‘장엄한’ 결혼식이었다.
자연 전임 학교의 동료들 면면이 스쳐갔다. 애경사에 빠지지 않던 동료들을 만나게 되어 오랜만이니 놀자고 하면 어쩌지 하는 엉뚱한 고민이 생기기까지 했다. 작년 결혼식 때 교장은 쾌히 수표 10만원 권을 내놓으며 교사들의 뒤풀이를 밀어줬던 것이다.
조금 길을 헤매다 예식장에 찾아가니 이미 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좁은 예식장 안은 벌써 일가친척들로 꽉 채워져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입구에서 예식장 안을 기웃거리며 엉거주춤 서 있는데, 아는 얼굴이 다가왔다. 이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 교사였다.
동료들이 지하 식당에 있다 하여 곧장 내려갔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아는 얼굴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악수를 하고 보니 정년이 단축되기 전 65세로 퇴직한 원로들뿐이었다. 놀랍게도 이전 학교 교사들은 3명뿐이었다.
식사하면서 식당 안을 휘둘러보아도 더 이상 옛 동료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예식이 끝났는지 교장이 들어와 식사하는 하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눌 때까지 식당으로 들어오는 옛 동료는 더 이상 없었다.
아무리 떠나면 그만이라지만, 전임교장(퇴직한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의 딸 결혼식에 온 그 학교 교사가 3명뿐이라니! 새삼 작년 이맘때 결혼식이 떠올랐다. 정확히 셈해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교사들이 식장에 얼굴을 비쳤던 것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물론 애경사 품앗이야 서로 주고 받는 것이고, 바쁜 일이 있어 봉투만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냥 하기 좋은 변명일 뿐이다. 작년의 결혼식 때는 바쁜 일이 없어 그렇듯 우루루 몰려온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때 그들이 결혼식에 온 것은 부하직원이기 때문이었나, 친목회에서 일률적으로 부조하는데도 굳이 개별 봉투를 만들어 낸 것은 일종의 보험이요 눈도장 찍기의 그렇고 그런 제스처였단 말인가?
세상 사는 인심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태이지만, 그것이 교직사회에까지 만연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심보로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해서 하는 말이다. 도대체 그 많던 교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