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전 3학년 담임일 때 일이다. 봄기운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어느 날, 난 새까만 돼지 한 마리가 가슴에 안기는 꿈을 꾸었다. 남들이 좋다는 꿈을 꾸면 반드시 기쁜 일이 생겨서 평소 꿈의 효력을 잘 믿던 나였다.
순간 징그럽기도 했지만 '야, 돼지꿈은 굉장히 좋은 꿈이라던데…오늘 퇴근길에 복권이나 사 봐야지' 생각하며 다시 맛있게 잠을 잤다. 그날 꿈의 효력이 사라질까봐 가족에게도, 옆 반 선생님께도 난 꿈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그런데 체육시간이었다.
오늘 단원은 '구르기'. 실내 체육실에 매트를 깔고 한창 구르기를 지도할 때였다.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린 지현이가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엄마가 사준 거북이 목걸이가 없어졌어요.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했는데…잉잉∼" 그랬다. 건강하게 살라는 뜻으로 목에 걸어준 금거북이 매트 위에서 이리저리 구르다 없어진 것이다.
수업을 10분쯤 당기고 모두 주위를 둘러보며 금거북 사냥에 나섰다. 한참을 찾아도 나오지 않자 지현이는 더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복도에는 벌써 다음 체육수업을 기다리는 옆반 아이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몇 번을 더 찾아보았다. 역시 발견하지 못했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구르기를 했으니 혹시 옷속에 숨어 있을 수도….'
지현이를 불러 체육복 상의를 벗기고 바지를 만져봤다. 흰 타이즈가 지현이의 런닝 위 허리를 조여주고 있었다. 런닝을 조심스레 타이즈에서 빼어 올렸다. 그러자 뭔가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금거북이었다.
"와∼우리 선생님 귀신같이 잘 찾아내신다!" 박수 치는 아이들, 환하게 웃는 지현이를 보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기분 좋게 교실로 돌아오면서 순간 돼지꿈 생각이 났다.
'아하! 돼지꿈이 금거북이었구나. 역시 돼지꿈은…'
솔직히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지현이의 웃음으로 꿈속의 돼지는 충분한 역할을 한 셈이었다. '돼지꿈의 힘이 제자에게 써졌으니 됐어!' 퇴근길, 난 복권을 사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