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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케르만(Kerman)주 아르게 라이엔(Arge Rayen) 의 신비


오랜 역사를 가진 이란에 좀 오래되었다는 도시에는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성들이 대부분 있다. 이란 서부 도시 호라마바드에 파라콜 성, 북서부 도시 비저러 성, 카스피안 작은 도시 후만 성, 유네스코 등록 문화재인 아와즈 초가잔빌 성, 케르만 주 밤성이 대표적이다.



모든 성들이 워낙 오랜 세월을 지내오다보니 지진을 만나고 외침을 받아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이번엔 1천 여년의 역사를 지닌 케르만 주 아르게 라이엔( 참고로 아르게는 페르시아어로 성(城)을 뜻함)를 찾았다.

이곳 케르만 주의 대명사 격인 아르게 밤이 케르만 시에서 남쪽으로 200여km 지점에 있고 아르게 라이엔은 그 중간 지점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아르게 밤이 지난 2003년 12월 말 대지진으로 거의 제모습을 잃버렸다. 몇 달 전 필자가 방문했을 때 느낌으로는 80-90%는 파괴된 것 같았다. 하기야 진흙으로 쌓은 성이 무슨 힘이 있겠나?



이웃에 이런 거대한 밤성 때문에 라이엔 성은 늘 찬밥 신세였다. 이웃 사촌 성이 면서도 교통이 불편하다는 점과 그 규모가 밤성의 1/4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 탐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늘 소외를 당했다고 할까?

이런 소외된듯한 성을 필자가 찾게된 동기는 오랜 역사에 걸맞게 제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진의 피해를 입은 밤성이 워낙 웅장해 그렇지 라이엔 성이 유적지가 적은 나라에 태어났다면 국보는 물론 유네스코 등록 문화재에 입학하고 남음직했다.



케르만 시에서 라이엔으로 가는 합승택시 정류장인 싸라씨업 광장까지 오니 금방 택시가 있다. 1인당 우리 돈 2천원이다.시원하게 쭉 뻗은 도로를 달려 1시간에 목적지 라이엔에 도착했다.

인구 5천명 내외 작은 마을이다. 마을 뒤로 이란 남부 최고봉인 헤저르(Hezar 4,420m)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6월 말이 다되어 가는데 산정엔 아직도 잔설이 남았다. 시내 중심지 광장에서 서쪽으로 약 1km 지점에 있어 슬슬 걸었다. 찾아오는 외국인이 귀한지 오가는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헬로’로 인사를 건넨다.‘헤일리 모차케람’ 그냥 감사하다는 말을 툭툭 내뱉고는 목적지로 향한다.



입구에 자그마한 공원이 깔끔하다.바로 위에 라이엔 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밤성의 1/4 정도 크기라는 선입관이 있어 별 것 아니겠지하는 마음으로 찾았는 데 선입관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웅장, 섬세함 그리고 질서 정연한 성 앞에 서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바깥에서 바라본 성벽은 철옹성 같은 느낌이었다. 성벽의 둘레 전체가 약 1.5km에 달했다. 성을 쌓아올린 밑부분 뚜께가 3m란다. 위로 올라갈수록 얇아지는 데 제일 위쪽 뚜께가 1m 란다. 성의 높이는 필자의 추측으로 20m는 넘을 것 같았다. 성 전체에 15개의 정찰용 탑이 있다. 이것만 보아도 이 성의 위용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1천여년 전 작은 군주가 살았던 성이란다. 작은 부족국가라고 보면 이해가 쉬우리라. 입구에 들어서니 이 성에 거주하는 성주와 일반인들이 사용했던 버저러(시장)가 있고 입구 오른쪽엔 일반 백성의 거주지이고 왼쪽은 성을 지키던 군인들이 기거했던 병영터이다. 성 중앙엔 마굿간, 각종 창고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큰 성 중앙에 다시 작은 성을 쌓아서 그기에 성주 가족이 기거했다. 작은 성안엔 성주를 도왔던 행정관들의 집, 손님들 방, 연회장이 골고루 배치되어 있었다. 자연광으로 조명을 하기 위해 천장에 작은 구멍이 있어 이를 통해 밝은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성 외곽과 성 안쪽이 무척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외침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군인과 일반 시민들이 나눠서 성 경비를 맡았으며 정찰용 탑이 팔방으로 다 설치되어 있어 안전에 최우선을 두었다.



숨죽이면서 2시간의 탐방을 끝내고 나오는 입구에 아직도 수작업으로 각종 공구를 제작하는 젊은 장인 두 사람이 포즈를 취해준다. 밤성에 밀려 150여 년 동안 방치하다시피한 라이엔 성을 1996년부터 이란 문화재청에서 대대적으로 보수 작업을 펼쳐 지금의 찬란한 모습을 선물하고 있다.



페르시아 문화와 찬란한 역사 그리고 웅장, 섬세, 질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페르시아 문화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더해간다. 나오면서‘찬란한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의 꿈을 다시 이루소서’라고 방명록에 한국인으로 처음 기록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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