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7월28일 정부는 교원존중 풍토 조성, 업무부담 완화, 처우 개선 등 10개 분야 32개 추진과제로 구성된 교직발전종합방안을 발표했다. 핵심내용은 2005년까지 학급담당 수당을 20만원, 보직교사 수당을 10만원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이었다.
교실붕괴 상황을 우려하는 국민적 관심사 속에 교원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명목으로 2년여에 걸쳐 수억 원을 소모하며 마련된 이 방안이 시행 1년만에 난파될 위기에 처해 있다. 당시 한완상 교육부장관은 관계부처와 합의된 사항이라고 밝혀 이 계획의 이행을 기정사실화 했다. 교직발전종합방안의 직접적인 입안 동기는 무리한 교원정년 단축 조치로 인한 교원들의 저하된 사기를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후딱 후딱 각종 중장기 방안을 잘도 만들어내는 정부가 교직발전종합방안을 성안하는 데는 무려 2년여를 꼬박 소요했다. 쟁점 사항별로 전국을 순회하며 공청회도 수십 차례 했다. 어렵사리 탄생한 교직발전종합방안이었건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수석교사제, 교원보수 체계 개편, 대학원 수준의 교원양성체제 등은 장기 검토과제로 미뤄져 교원들에게 아쉬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미흡하나마 난산 끝에 나온 작품이어서 실천에는 무리가 없는 것으로 짐작됐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내년도 정부예산안에 담임·보직교사 수당 인상 소요액이 한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기획예산처가 교직발전방안의 이행과 교원단체와의 교섭 합의사항에 따라 교육부가 요구한 소요액을 거의 대부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교총
관계자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고 따졌더니 교육부 관계자는 '교직발전방안이 일종의 대 국민 사기극이 됐다'며 겸연쩍어 했고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정부 예산편성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은 '교육예산 GNP 5%' 공약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당시 교육부는 97년 가을 98년도 교육예산으로 GNP 5% 규모인 24조원을 요구했고 재정경제원은 22조원 안을 잠정 확정했다. 이로 인해 교육공약 이행 논란이 빚어지자 김영삼 대통령은 교육계 손을 들어주었다. 재정경제원에 공약 이행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당시 재정경제원은 5% 수치를 맞추기 위해 학생들의 수업료를 교육예산에 포함시켜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교육세 탄력 인상, 시·도 기채를 통한 확보 방안을 내놓았다.
아예 나몰라라하는 국민의 정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더욱이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대통령 후보 공약과 국가 정책의 실천 프로그램인 정부의 중장기 계획은 그 약속의 무게가 다르다. 정치인이 선거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사기라고 규탄하기는 어렵다. IMF 경제위기 상황이 몰아닥쳐 결국 GNP 5% 교육예산안을 반영한 정부예산안이 제대로 이행되진 못했지만 교육계는 교육예산 문제에 관한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약 실천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 정부는 대통령 공약 이행률이 극히 저조할 뿐만아니라 이제는 집권기간 중 국민을 상대로 약속한 정책프로그램마저 헌신짝 취급하듯 하니 안타깝다. 이제는 그야말로 '대 국민 사기극'의 책임 소재를 규명해야 할 것 같다. 교원들의 비난 여론이 빗발치는 데도 청와대가 잠잠하면 이를 기획예산처 만의 독단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교직발전방안의 이행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과연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대 국민 사기극'의 주연과 조연은 누구인가 의문이 꼬리를 잇는다. 진정 청와대, 기획예산처, 교육부의 합작품이 아니길 바란다. 기획예산처가 악역을 담당하고 교육부와 청와대가 이를 방조하는 것이라면 국민들 앞에서 교원들만 우롱 당하는 꼴이다.
당시 언론들은 담임수당 20만원, 보직수당 10만원을 크게 보도했다. 이를 접한 국민 일반은 교원처우를 개선한다는 정부 계획에 대해 박수를 보내면 보냈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국민들이 정부가 담임수당과 보직수당을 단 한해 월 2만원씩 올려주며 그렇게 호들갑 떤 사실을 제대로 알까.
교원들은 이 시점에서도 청와대가 기획예산처에 교직발전방안의 이행을 촉구하고 내년 예산에 반영되는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국회도 내년 정부예산을 심의하는 가운데 이를 철저히 따지고 교직발전방안 이행을 위한 소요예산 확보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