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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먼지 위에 싹 틔우는 민들레


태풍 '루사’가 강원도와 경상도에 큰 피해를 주던 날, 나는 A 시 모 예식장에서 친구 딸 결혼 주례를 맡았었다. 평소, 결혼식의 주례는 적어도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고 지혜와 슬기가 남다르며 덕망이 높은 이 순(耳順)의 경지에 이른 분이라야 적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딸을 외국으로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주례 부탁을 하는 친구에게 등 떠밀린 약속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이 친구 춘부장께서 우리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훌륭한 선생님으로 교단을 지키시다가 홀연히 이승을 떠나셔 이 친구의 인생 길이 순탄치 만은 못했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주례사에서, “아름다운 무지개가 서려면 비와 햇빛, 둘 다 동시에 필요하듯이 두 부부의 인생을 무지개 빛처럼 곱고 아름다운 색조를 띄게 하려면 기쁨과 슬픔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왜냐하면, 번영과 즐거움 밖에 모르는 사람은 딱딱하고 경솔하지만 번영과 역경, 둘 다 함께 겪는 부부는 부드럽고 의젓해 지는 법이기에 내 인친척이나 직장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무지개 같은 존재가 될 것을 감히 부탁한다.”라고 힘을 주어 말했던 것이다.

그 날밤, 태풍‘루사’의 피해 소식을 간간이 보면서 친구들과 소주잔을 나누는 자리에 한 친구가 나의 주례사 일부를 칭찬하는 순간, 나의 머리 속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 초등학교 6학년 시절로 돌아 간 것이다. 그 해 초겨울, 담임 선생님께서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일찍 집으로 가라는 말씀이셨다.

'조퇴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는데…’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의 거리가 먼 곳이 아니기에 부지런히 걷기보다는 천천히 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 사거리 담배 가게 모퉁이에서 커브를 돌면 우리 집이 보여야 하는데 우리 집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타다 남은 시커먼 기둥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침나절 불자동차의 요란했던 싸이렌 소리와 쉽게 연관 지을 수 있었다. 집 안 쪽으로 방 두 개가 속을 드러내 흉칙한 몰골이었다. 이 순간의 허탈감! 어린 마음에도 기가 막혀 울음이 터지지 않았고 그냥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불자동차의 싸이렌 소리가 나면 가슴에는 쿵쾅쿵쾅 뭔가를 찧는 버릇이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아버님의 연세가 불혹 근처, 아버님은 그 이후 스무 해도 못 사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떠나시는 날까지 어려운 생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셨다.

주례를 선 그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일 뉴스에 피해 현장의 갖가지 모습이 비쳐질 때마다 수많은 수재민들의 형상은 만인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고도 남았다. 그 분들의 공허한 마음을 어떻게 필설로 표현하겠는가?

맹자는 시련을 극복한 뒤에야 진정한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장차 큰 일을 할 사람에게 부여하는 하늘이 내린 시련이라는 것이다. 맹자가 이번 사태를 보고도 이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의 아버님은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로 단 한번의 실수였는데 그 일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하물며 엄청난 수마의 갖가지 피해 상황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끔찍한 이 현실, 혹자는 가족이 아니면 이런 비극을 비극처럼 느낄 수 없다고 한 말은 터무니없는 망언으로 여겨진다. 넓은 학교 운동장, 빗물에 잠겼던 각종 기 교재와 젖은 서류, 서류를 넣었던 캐비넷, 흩어진 책걸상 옆에서 2학기 어린이 교육을 걱정하시는 피해 학교 교장 선생님의 주름진 얼굴 모습이 내 가슴에 각인이 되어 지워지지를 않는다. 그러나 이젠 어쩌겠는가!

어느 시인은 그 어려운 시절 감옥에서 6년 동안 버텼는데, 창턱에 앉은 민들레 씨앗이 먼지 위에 싹을 틔우는 것을 보고 견뎠다고 한다. 도하 각 신문, 방송국에 성금을 내는 분들, 자원 봉사자, 군인, 심지어 외국 군인까지 수해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것은 분명히 문틈의 먼지와는 다르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미 일본으로 떠나 간 신랑과 신부에게 주례사 일부를 바꾸어 주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었다. “마음의 무지개가 피지 못한다 하더라도 두 사람의 눈에 눈물이 없기를 바란다.”라고 읊조리는 내 입술에 세찬 빗방울이 부딪치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태풍 '루사’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속하기 그지없는 15호 태풍 '루사(RUSA)’영원히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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