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지만 전주교대에서는 7월 10일부터 24일까지 작은 학교가 진행되었다. 바로 ‘역사학교’라는 것인데 전주교대 총학생회와 역사기행동아리가 함께 주최하여 진행하는 것이었다. 선배의 권유도 있었고 다른 과 사람들도 많이 알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역사학교도 학교이기 때문에 담임선생님도 있고 교무주임선생님,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학교의 모든 잡일을 도와주신 소사님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얼떨결에 우리 반 반장이 되어버렸다.
첫째 날에 우리는 입학식을 했다. ‘자주성 가지면 주인 되고 잃으면 노예 된다’라는 기치를 두 번씩 외치고 교가를 불렀다. 교가는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라는 노래였는데 부를수록 괜찮은 노래였다.
첫 번째 강의 주제는 ‘평양성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였다. 1강에서 우리는 고구려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자주와 항쟁의 역사를 배웠다. 수나라, 당나라에 맞서서, 그리고 임진왜란에서 일본에 맞서서 우리나라를 지켜낸 것은 바로 민중이었다. 우리는 외세에 쉽게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민중이었던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항상 영상과 반별 토론이 있었다. 오늘의 토론 주제는 ‘자주와 사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자주의 역사, 사대의 역사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자주란 자기 스스로 주인 되고 누구의 힘을 믿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첫째 날은 입학식도 하고 사람들끼리 어색한 것도 없애기 위해 뒤풀이와 반별 게임도 진행되었다. 그래서 즐겁게 사람들과 알아가는 하루가 되었다.
2강의 주제는 ‘완전한 해방은 오지 않았다’이다. 2강 때는 해방 이후에 미군정과 주한미군에 대한 내용을 들었다. 2강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6.25’가 ‘6.25’가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것이다. 어떤 전쟁이 일어나려면 원인과 배경, 그리고 과정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크고 작은 전쟁들이 발발되고 있었다. ‘6.25’라는 명칭은 이러한 전쟁의 배경과 과정을 발발했다는 그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게 하여 객관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강의 후에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의 사진과 미국의 양민학살 등의 사진자료를 보았다. 그리고 ‘주한미군은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여태까지의 토론 중 가장 열띤 토론이 이루어 졌다.
3강의 주제는 ‘일어서는 민중, 전진하는 역사’였다.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 맞서서 민중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어 가는 내용을 배웠다. 물론 4.19혁명, 5.18민주화 투쟁, 6월 항쟁 등 이러한 투쟁 후에 언제나 갖는 한계점들이 있었지만 역사의 그래프는 이러한 굴곡을 그리면서도 발전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민중의 힘으로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수업 후에 ‘바위섬’이라는 노래를 불러보았는데 이 외딴 바위섬이 ‘5.18민주화 투쟁’의 광주를 뜻하는 것인지 처음 알았다. 그래서 더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3강이 끝나고 우리는 중간기행을 떠났다. 우리는 정읍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에 들러 전시관을 둘러보고 우리끼리 사발통문을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해바다로 가서 게임도 하고 물놀이도 하며 사람들과 더욱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제 4강의 주제는 ‘IMF신탁통치, 그 베일을 벗긴다’였다. 4강에서는 우리 경제가 외국자본에 의하여 예속되어가는 과정을 배웠다. 경제수업이었지만 지루하지 않고 가장 재미있고 와 닿는 수업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가장 답답해졌다. 도대체 우리나라 기업 중 과연, 정말 우리나라 기업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기업이 몇 개나 될까? 은행 중, 한두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50%이상이 외국자본이었다. 심지어는 서민들이 사 마시는 물과 술도 모두 외국 기업에 팔려가서 나오는 제품들이었다.
마지막 제 5강 ‘자주통일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에서는 통일에 대하여 배웠다. 가장 희망적인 수업이라서 마음은 즐거웠다. 그리고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6.15공동선언’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드디어 5강이 끝나고 우리는 1박 2일의 졸업기행을 떠났다. 완전 즐거운 분위기였다. 우리는 두 대의 차를 타고 광주로 가서 망월동 묘지에 도착했다. 묘지 입구에서 조선대 의대 학생이 우리에게 설명을 해 주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고인이 되신 민주열사분들께 묵념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리고 묘지를 둘러보며 잠드신 열사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역시 앉아서 강의만 듣는 것 보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학습이었다. ‘두렵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뭔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망월동 묘지를 모두 둘러본 다음 광주교대로 가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준비해 간 저녁을 먹고 졸업시험을 쳤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졸업장과 개근상을 받았다. 모범상, 공로상, 모범반 상 시상식도 있었다.
거의 모든 행사는 12시가 다 되어 끝이 났는데 두 원으로 둘러 앉아 선배와 후배가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태 얼굴은 알지만 말 한번 해 보지 못한 후배, 선배와도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사학교 기간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을 남겼다는 것이다. 같은 편집실 후배와 나는 함께 개근상을 받았는데 후배에게 뭔가 모를 감사함과 뿌듯함 때문에 꼭 안아 주었다. 역사학교가 단지 2주간의 수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우리가 예비교사로서 뚜렷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2기 역사학교 졸업생이지만 내년에도, 또 내 후년에도 3기, 4기 졸업생들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