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학교폭력'이란 말이 일상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교육자의 한사람으로서 이 말은 '왕따'라는 말보다 더욱 못마땅하다.
실제로 어떤 학교에서 교육적 처방만으로는 도저히 치유가 불가능한 정도의 폭행 상해행위가 벌어졌다고 치자. 이럴 때 학교폭력이란 말을 쓴다고 시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목격되는 사소한 교우·사제 관계의 비뚤어진 모습은 성장의 한 과정으로서 일시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학교폭력이라는 말로 매도할 성질이 아니라고 본다.
학교폭력이란 과장된 표현을 마구 사용하면서 얻는 것이 있다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잃는 것이 훨씬 많다. '학교폭력'이란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면서 어느덧 학교 하면 사랑이 움트는 곳이 아니라 학교폭력을 구조적으로 잉태하는 곳이라는 착시현상마저 불러일으킨다.
학부모들로 하여금 '학교가 이미 그러한 곳으로 전락되었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 학교불신을 조장한다. 교원들은 이 말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현상을 지칭하는지 무리 없이 소화하지만 일반 학부모들은 대체로 동요하거나 불안해한다.
학교폭력이란 말은 마치 쌀에 뉘가 섞인 것을 보고 '뉘 천지'라고 부르는 것처럼 과장된 표현일 뿐만 아니라 비교육적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할 때, 교원이 할 때와 검·경찰 측에서 할 때 결과에서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 그 결과를 놓고 검·경찰 측은 교원들이 은폐하려는 것으로 몰아 부치기 일쑤다. 이는 두 주관자의 의도와 목적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검·경찰 측에서는 흔히 이런 조사를 하면서 "아무걱정 말아라, 아저씨만 믿어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적어라, 비밀은 보장된다" 등 회유성 발언으로 지극히 사소한 것까지도 다 폭력이라는 올가미에 싸잡아 놓고자하는 경향이 있다.
생활지도 등 교육적 처치만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사소한 일탈행위에 대해 섣불리 학교폭력이란 말을 그야말로 폭력적으로 남용하지 말자.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했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이를 믿게 된다. 요즘 흔히 쓰이는 '학교폭력'이란 말은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 또는 '약자 가해' 등이나 '청소년 문제' 라는 용어로 얼른 바꿔 써야 한다.
실제 사법적 처치가 필요한 정도의 사안은 일어나서도 안될 일이지만 그러한 사안이 설령 일어나더라도 학교폭력이란 말을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