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어, 본격적인 선거체제로 들어서고 있다.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각기 후보수락 연설에서 교육정책에 관하여 언급하였지만 주목을 끌만한 내용은 없었다. 교육평준화정책에 대한 약간의 입장 차이를 드러냈을 뿐이다.
각 후보 캠프에서는 현재 선거공약 작성작업을 하고 있을 것인데, 교육정책에 관하여 어떤 공약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하다. 공약이 때로는 헛된 약속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대통령후보의 공약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통령 후보들의 교육분야 공약 작성에서 유의하여야 할 중요한 항목들을 여기에 제시한다.
첫째, 국정우선순위의 최상에 교육정책을 놓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21세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지식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선진국들이 지난 세기 말부터 교육정책을 국정의 최우선순위로 끌어올리고 교육발전정책을 추진한 것은 지식기반시대에 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역대 대통령들은 말로만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장담하면서도, 실지로는 이런 저런 핑계로 교육문제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공교육이 입시교육기관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고급전문인력의 양성체제가 취약하기 때문에 아직도 해외유학으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 대통령은 교육을 확실하게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분명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야 한다.
둘째, 교육제도의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학교제도에 관한 정책에 치중하는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21세기는 평생학습시대이다.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교육 정책만이 아니라, 성인과 노인의 학습생활을 지원하는 새로운 감각의 정책 제시가 필요하다.
전국 방방곡곡을 '학습도시', '학습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정책을 누가 제대로 만들어 제시하느냐가 후보를 가리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기업교육에 대한 국가정책과 아울러 실업자와 전업자의 재교육 문제에도 어떤 정책을 제시하느냐가 중요하다.
셋째, 교육에 있어서 수월성과 평등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 정책의 제시여부에 국민들은 주목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고교평준화정책이 자주 거론되지만, 쟁점이 겉돈다. 평준화는 학교간 학생의 질적 수준을 균등화하기 위하여 신입생을 강제 배정하는 정책이지 교육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본격적 정책이 아니다. 동시에 평준화가 수월성 추구를 가로막는 주범도 아니다. 교육평등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같은 저소득 가정의 유아교육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획기적 대학교육 장학정책이 필요하다. 한편 교육수월성 추구를 위해서는 질 관리 정책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영재교육강화 정책을 채택하여야 한다.
넷째, 교육제도와 제도관리에 있어서 유연성을 높이는 어떤 정책을 누가 제시하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한국 교육제도의 최대 문제는 제도 자체가 획일적일 뿐 아니라 제도를 운영하는 행정도 경직되어 있다는데 있다. 우선 우리는 국공립과 사립에 제도상의 차이가 없다. 제도적으로 사립 학교와 대학의 자율성과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공립의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는 진정한 사학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문제를 풀어주는 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교육과정을 인정하는 학교의 다양화 정책도 나와야 한다. 대학교육의 자율화 확대는 정권마다 말만 앞세우고, 실적은 거의 없었다.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기대한다.
다섯째, 교육정책을 대통령임기와 연계시키지 말아야한다. 놀랍게도 그동안 실패한 교육정책의 상당수는 정책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었다. 장기적으로 추진해야할 정책을 임기 내에 열매를 따기 위하여 무리하게 추진하였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교육이 백년을 바라보는 사업이라는 뜻과 함께, 교육은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증적 단기 처방이 아니라 한국교육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장기적 안목의 정책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