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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300억 대 폰트 저작권 학교 공습 위기

최근 인천 150여 초교에
"구매 안하면 고소" 공문

현장 "폰트에도 저작권?"
당혹·불쾌·불안감 교차

전국 교육기관 모두 타깃
교육당국은 눈치 보기만


수년 전부터 학교현장을 수시로 괴롭혀온 저작권 침해 시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까진 주로 사진·그림 등 이미지나 문학 작품 등이었다면, 이번엔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 등에 쓰이는 폰트 파일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초 인천 150여 초등학교에 '윤서체 컴퓨터 프로그램 폰트저작권의 올바른 사용 및 계도안내'라는 공문이 전달됐다. (주)그룹와이(윤디자인) 대표 명의로 발송된 이 공문에는 해당 학교가 자신들의 폰트(윤서체)를 무단 사용해 온 증거를 확보했으니 법적 대립에 앞서 275만원 상당의 라이센스를 구매하라는 내용과 프로모션 리플릿이 들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학교가 이를 단순한 협박성 광고물 정도로 보고 무시했다. 그러나 며칠 후 '법률사무소 우산' 명의로 '저작권법 위반 관련 처리 내용의 건'이란 민·형사상 소송을 경고 공문이 도착하면서 학교현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대부분 교원들은 "그냥 컴퓨터에 깔려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썼는데 갑자기 소송이라니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그간 수차례 다른 업체의 강매 요구를 경험했던 터라 "치사한 영업행위 아니냐"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이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정말 소송하겠다고 덤벼들면 학교 입장에서는 대처가 어렵다"며 불안함도 내비쳤다.

현장의 불만이 높아지자 뒤늦게 인천시교육청이 직접 처리하겠다고 나서면서 혼란이 잠시 진정된 상태지만 양측의 입장차가 커 완전한 해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윤디자인 관계자가 증거로 제시한 위반사례는 광범위하다. 학교에서 작성되는 각종 보고서와 가정통신문 등 문서파일은 물론이고, 교실 뒤편 게시판 안내문구, UCC 자막, 프리젠테이션 자료 등 활자가 들어간 곳곳에 윤서체가 쓰였다. 심지어 교육청 공식문서에 사용된 것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이미 대부분 학교에서 무단 사용해왔고, 일부 학교가 그렇지 않았더라도 순환근무제 특성상 위반사례가 타 학교로 얼마든 전파될 수 있다"며 "향후 위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교육청이 일괄 구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교육청은 "저작권을 침해했다면 그에 대한 보상금 지급 등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겠지만, 교육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어려운 폰트를 무작정 다 사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심각한 것은 이 문제가 인천 지역 초등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디자인 관계자에 따르면 전국 모든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증거자료 확보와 구매 권유에 나선 상태다. 해당 라이센스가 교당 275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국 규모로 번질 경우 총액 300억원 이상 규모의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윤디자인은 지난 4~5월경에는 국·공립유치원들을 대상으로, 7월경에는 서울시교육청에 합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교육청 관할 21개 도서관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고소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중 수사가 종결된 12개 도서관 중 11곳에 무혐의 결론이 났지만, 1곳은 기소유예 판결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 측은 수사 추이 등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윤디자인 측은 "무혐의 처리된 곳도 위반 사실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 처벌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며 "조만간 민사소송 등 추후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윤디자인이 저작권 문제를 들고 나온 지는 이미 수년째다. 처음엔 기업 등이 주요 타깃이었지만 이제는 일선 교육현장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2013년에는 대학, 지난해는 사립유치원이 갈등 끝에 결국 공동구매로 타협했다. 어린이집도 수년째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관계자는 "여러 변호사에게 자문을 받은 결과 폰트 사용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고, 설령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해당 업체가 민·형사상 고소를 병행하면 교육활동에 상당한 어려움과 금전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대학 관련 저작권 문제를 다뤘던 대학홍보협의회 관계자도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이런 전례대로라면 폰트 저작권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당국의 책임 있는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다들 물러서는 모양새다.

윤디자인이 처음 민원을 넣은 곳은 교육부였다. 그러나 교육부는 저작권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이라고 답했고, 또 문광부는 교육문제라며 다시 교육부에 공문을 보냈다. 이후 몇 차례 협의가 있었지만 결국 교육부는 소관 부서가 없다는 이유로 교육청에 알아볼 것을 권했다. 교육청도 “학교에서 위반한 사안이니 학교에서 해결하라”며 미루긴 마찬가지였다.

저작권에 대한 교육현장 인식도 점검이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 내놓은 '폰트 파일에 대한 저작권 바로 알기'에 따르면 폰트 도안 자체에는 저작물성이 인정되지 않고, 소프트웨어인 폰트 파일에 저작권이 인정된다. 따라서 문서나 동영상, 게시물 등 폰트가 사용된 결과물만으로는 저작권 침해가 입증되지 않고 PC에 저장된 폰트 파일이 확인돼야 한다. 아무리 저작권자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PC를 마음대로 열어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 이유로 폰트를 거리낌 없이 무단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식은 교육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학교에서 사용하면 무조건 저작권법 적용을 받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교육기관에서 쓰더라도 교육에 직결되지 않으면 보호받을 수 없다"며 "서류를 작성하거나 게시물을 만드는 행위를 교육행위로 보진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문광부 관계자는 "폰트 저작권과 관련해 파일만 적발되지 않으면 고소가 안 되는 걸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어느 정도 명확한 정황자료 등이 확보되면 수사기관이나 특별사법경찰의 압수수색도 가능하다"며 "공공기관이라고 예외는 아니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에 현장에서는 교육당국의 적극적 대처를 요구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인천 A초 교장은 “요즘 학교 형편에 이런 문제에 법적 대응하거나 라이센스를 구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교육청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공립유치원 관계자도 “유아교육엔 다양한 폰트의 쓰임새가 큰 편”이라며 “이번 기회에 교육부나 교육청이 이 문제에 대해 잘 정리해 주길 바란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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