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초등교 3학년 김은영(가명) 양은 요즘 컨츄리꼬꼬의 `콩가'를 들으며 등교한다. 어학용으로 사준 CDP지만 등하굣길, 학원 가는 길에는 늘 이정현, GOD, 신승훈의 최신 앨범을 듣는다.
"동요는 수업할 때나 유치원 다니는 동생과 슈퍼마켓 갈 때만 같이 불러요. 친구들 앞에서 동요 부르면 다 웃어요."
전북 부안동초 최신열 교사는 얼마 전 소풍 차량 안에서 아이들에게 무안을 당했다. 나들이 길이 지루할까봐 동요테이프를 틀었다가 이내 "선생님, 그게 뭐예요∼악동클럽이나 JTL 있으면 틀어 주세요"라며 핀잔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달' `섬집아기' `꽃밭에서' `고드름' 곱디고운 노랫말과 가락으로 어린이에게 꿈과 상상력을 심어주는 우리 동요다. 하지만 지금 초등학생들은 더 이상 동요를 부르지 않는다. 동요는 그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노래일 뿐, `즐겨 부르는' 노래는 온통 최신 댄스가요다. 초등생까지 `대중' 가요에 열광하면서 동요는 설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학교 소풍이나 학예 발표회에서 동요를 부르는 모습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충북 내곡초 오하영 교장은 "운동회 소풍 때 동요를 부르면 아이들이 야유를 하며 `천연기념물'이라고 비웃어요. 구구단도 모르는 애들이 소풍 때 보여준다고 힙합 춤과 랩을 열정적으로 연습하는 걸 보면 기가 찬다"고 말했다. 울산약수초 강수경 교사는 "2학년 꼬맹이들도 한 아이가 여우와 솜사탕 겨울연가 왕건 주제곡을 흥얼거리면 금세 모두 몇 번씩 따라 부른다"고 말했다.
당연히 `좋아하는 노래'를 조사하면 가요 일색이다. 경기마송초 조원표 교사는 며칠 전 반 아이들이 적어낸 `나의 애창곡'에 동요가 단 한 곡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순위 10위까지 `파워디지몬' 주제곡을 빼면 SES의 `U', GOD의 `거짓말', 핑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등 모두 아이돌 가수의 노래뿐이다.
아이들의 일기에도 `누구누구 가수를 정말 좋아한다'는 내용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난 10살이다…노래방에 가서 김범수의 `하루'를 불렀다. 다른 친구들은 싸이나 GOD를 좋아하지만 난 개성 있게 생긴 김범수가 좋다. 엄마 아빠는 동요를 불러 보라고 하셨지만 내 노래 실력에 깜짝 놀라시며 박수를 크게 치셨다. 저번에 내가 서태지 랩을 할 때는 삼촌과 이모도 `그걸 어떻게 외웠냐'며 놀라셨다. 내 친구들도 동요는 유치하고 재미가 없다고 잘 부르지 않는다. 내일은 TV에서 김범수가 나오는 쇼가 있다. 정말 기대된다.'
임규순 서울장위초 교사는 "일기를 보면 자극적이고 현란한 TV 가요프로그램을 보고 부르는데 부모가 전혀 제재하지 않는 상황을 엿볼 수 있다"고 개탄한다.
TV만 켜면 매일 인기가수들의 춤과 노래를 접할 수 있는 아이들이 가요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 서울 상계초 5학년 박재훈(가명) 군은 "가요는 멋있는데 동요는 시시하잖아요"라고 잘라 말한다. 현재 동요 프로그램은 어린이 시청자의 무관심으로 멸종 위기에 있다. 가요 프로그램이 평일 시간대까지 영역을 넓힌 것에 반해 동요 프로그램은 억지로 명맥만을 유지한 상태다. 폐지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부활한 KBS 1TV의 `열려라 동요세상'(매주 토 오후)과 EBS 라디오의 `오후의 음악선물'이 전부다. 그나마 아이들은 "재미도 없고 만화 프로그램과 겹쳐 안 본다"며 냉담한 반응이다.
이제 가요를 모르면 `또래문화'에서도 소외된다. 부부 교사면서 동요 작곡·작사가로 활동중인 박수진·김애경 교사는 집에서 늘 자녀들과 동요를 불러왔는데 6학년 학예회를 앞둔 첫 아이가 털어 논 고민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친구들이 댄스가요를 부르기로 정했는데 자기는 어울릴 수가 없다면서 지금부터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었다"는 김 교사는 "가요를 모르면 또래문화의 이방인이 되는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남녀의 사랑이나 기존질서의 파괴를 노래하는 난삽한 가사와 감각적인 춤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면서 해맑은 동심을 해칠까 우려된다"고 말한다.
이런 위기 의식 때문인지 최근에는 아이들이 동요를 많이 접하고 부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려는 단체와 초등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 상촌초의 `가족 동요 부르기 대회', 경기 부천대명초의 인터넷 `세마치 동산'을 활용한 `이 주일의 동요 부르기', 강원 인구초의 매일 아침 동요 부르기, 하루 종일 화장실에 동요를 틀어 놓는 경기 둔전초는 이런 시도의 일부분일 뿐이다. 또 서울초등음악연구회, 한국동요음악연구회, 파랑새창작동요회, 동요사랑회 등 교사를 중심으로 한 동요 단체들은 창작동요집과 동요음반을 발매, 보급하면서 동요의 대중화를 모색하고 있다. 또 각종 동요제를 열어 동요 `붐' 조성에 나섰다.
기청 서울초등음악연구회장은 "동요 살리기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찾아주는 일"이라며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로 학교와 가정 그리고 방송사가 협력해야 한다"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