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가진 첫 직업은 중학교 교사였다. 그러나 교육 현장은 남다른 능력과 사명감을 갖지 않고는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고, 학교생활의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대기업으로 향했지만 직장 경력 40년이 가까워지도록 여태까지 교단의 향수를 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중소기업 임원까지 지낸 은퇴자로 새로운 직장 얻기를 포기할 수 있겠지만 다시 도전의 길에 나선 끝에 학생들과 교분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과학교육원에는 매일 다양한 학생들이 찾아와 탐구활동을 벌인다. 여태 과학과 동떨어진 곳에서 일했지만 이곳에 온 이후부터 관심을 가지고 관련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많은 지식을 전하기 위해 욕심내기 보다는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흥미를 갖도록 하는 일에 정성을 모은다. 과학의 출발은 바로 호기심, 탐구심, 상상력 등이지만 틈이 나면 신문 읽기와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내가 담당하는 탐구실에서 가장 인기 높은 코너는 로봇 존이다. 학생들에게 신나는 로봇의 율동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면 선물을 주겠다고 했더니 모두가 춤 열기에 흠뻑 빠져든다.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도 분위기만 잘 조성해 주면 온통 흥겨움으로 넘친다. 때로는 담임선생님의 손목을 끌며 함께 춤추자고 제안하는 학생도 있다. 어제는 열심히 춤 춘 학생들이 선물을 달라고 하도 조르기에 내 선물은 업어주는 것이라고 했더니 남녀 학생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바람에 혼쭐이 나기도 했다.
어쩌면 이곳이 마지막 직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기 힘든 나이임을 내 모를 리 없다. 늘그막에 가진 보람의 일터에서 사랑스런 학생들과 더불어 봄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드문 행운이다. 범어산의 짙어가는 녹음이 건물 뒤로 펼쳐지고, 3호선 하늘 열차(Sky rail)가 그림처럼 전개되는 이곳이 별천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토록 쾌적한 환경 속에서 미래의 동량이 될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모른다. 신록의 계절에 어린이들과 더불어 내일의 희망을 함께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과학교육원은 나의 오랜 직장 생활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보람의 일터인 것을 감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