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예전 같지 않아 학생을 가르치기 힘들어 명퇴신청을 했습니다. 심란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오키나와 동계연수에 참가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고 싶은 생각이었지요.
역사가 카아(E.H.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은 내면의 나와 일상의 나와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일정에 맞춰 움직이면서 계속 내면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들지만 잘 버텼어. 사소한 것인데 당시에는 너무 크게 생각해 고민했지. 다 잘 될 거야. 다시 힘을 내어 힘차게 뛰어 보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보니 무척 멋지잖아.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여행과 달리 서로 소개하고 노래 부르는 시간이 없어 더 깊이 자신과의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와 교류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1월 8일부터 11일까지 계획대로 진행된 여행이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 일본속의 타국같은 지역이고 아열대 기후라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오키나와에 대해서 여행 가기 전에 거의 몰랐네요.
이번 여행에서는 총 81명의 교원 가족과 최대욱 단장님, 김재철 국장님, 김세철 과장님, 3분의 가이드를 포함하여 총 87명이 3대의 버스에 나누어 관광했지요. 최 단장님과 3철(?)이 모두 1호차에 승차,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어 주셔서 역시 여행은 1호차를 타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1호차 정의철 가이드는 관광지마다 자상하고 유머 있게 설명해준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아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정 가이드에 의하면 오키나와의 류큐 옛 왕국이 삼별초의 후손이 세웠고 쓰시마 번에 복속되는 1609년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했다고 하네요. ‘우리 조상이 살기 위해 몽고를 피해 여기까지 왔구나’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인간의 생존의지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이번 여행은 우리 조상이 오키나와에 와서 생활한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여정이 될 것이라 예상되더군요. 고려식의 기와와 한반도 형식의 석식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한반도에서 전래된 문명이라는 사실에 대해 더 신뢰가 가더군요.
나하 국제공항에 도착해 마주친 오키나와는 오묘한 물감을 칠한 듯한 바다와 하늘, 오염되지 않은 땅으로 눈을 정화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일정은 오키나와 월드 견학, 한국인위령탑 참배, 수리성 견학, 해양엑스포공원 견학, 류쿠무라 견학, 글라스보트 체험, 나고 파인애플 파크 견학, 아와모리 양조장 견학, 우라소에 성 견학, 오키나와 현립박물관 견학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다리가 불편해 되도록 최소한으로 움직이고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시간이 되는 대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관람하려고 했습니다. 그 정도야 애교로 바 줄 수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월드에 가서 에이사 공연을 관람할 때 가락은 단순하면서 경쾌하여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으샤 으샤’ 같이 들리는 추렴새가 꼭 우리 가락을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힘겹게 산 오키니와인들이 이런 가락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네요. 힘겨운 일상을 잠시나마 잊고 즐겁게 살려는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옥천동굴은 우리나라 고수동굴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인위령탑 참배하면서 우리민족이 나라를 잃은 탓에 남의 나라 전쟁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니 국가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졌습니다. 1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가치 없는 전쟁에서 죽으면서 얼마나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지요. 평화공원에서 20만 명의 전사자 명패를 보고 어떤 일이 있어도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원된 수리성은 규모는 우리나라 고궁에 비해 작지만 정결하면서 소박한 미를 지녔습니다. 왕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왕이 된 듯한 기분도 느껴봤습니다. 류큐무라는 우리 민속촌처럼 과거 류큐인의 마을을 재생시켜 놓은 곳이지요. 초가집 비슷한 것도 보였고 개방적인 가옥구조가 우리 농촌과 유사해 마을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우라소에 요우도레에 가서 석식 무덤도 보았습니다. 북방식이고 절벽 속에 위치한 것이 특징이지요. 해양 엑스포공원 내에는 동양 최대의 수족관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바다환경을 볼 수 있어 감탄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습니다.
여행하면서 먹는 것이 빠질 수가 없지요. 파인애플 농장에 들러 무인 카터를 타고 가면서 구경하고 시식했습니다. 아와모리 양조장에서 시음했던 전통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산호초로 아름다운 색깔을 띠는 바다를 글라스 보트로 체험하면서 구경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오키나와는 2차 대전 시 연합군과 일본군의 처절한 항전이 이루어진 곳이지요. 그 결과 많은 인명이 전사했고 유적들도 거의 소멸돼 옛 모습을 못 보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아직도 미군기지가 카네다 언덕에 있어 군사도시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17세기 초부터 사탕수수 재배로 착취한 것을 비롯해 태평양전쟁 시 군사기지로 사용해 오키나와에 많은 빚을 졌습니다. 현재도 미군 군사시설이 위치하고 있어 많은 부담을 주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외견적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거친 토양과 물 부족, 거친 바람으로 인한 제약 등으로 힘들게 살면서도 낙천적인 모습으로 밝게 생활하는 것이 대단하게 보였지요. 여건이 힘들다 해도 여기에 비하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행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으로 생각됩니다. 관점을 다양하게 넓혀 갈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집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오키나와에 와서 환경을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알차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모임을 주관하신 교총 관계자분들의 헌신과 친절한 가이드들의 안내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여겨집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