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휩쓸고 간 황사 때문에 일선 교단은 학생 건강관리는 물론 야외수업과 각종 행사 일정 조정에 골머리를 앓았다. 황사보다는 운동장을 뺏긴 현실에 아이들은 얼굴을 찌푸린 채 체육선생님을 졸라대고 한 초등교에서는 남몰래 마스크 상자가 전달되는 등 이런저런 일들이 황사처럼 스쳐갔다.
황사 내습으로 체육교사들은 운동장에 나가자는 학생들을 뿌리치며 이론 단원을 앞당겨 교실수업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인천 신현중 강건수 교사는 "8, 9일 2학년은 원래 농구시합을 해야하는 데 황사 때문에 중간고사 전 잡힌 이론수업을 앞당겨 체육의 역사를 공부했다"며 "교실 수업을 뻔히 알면서 항의 차 수업 장소를 묻는 남학생들의 불만을 해소해주지 못하는 찜찜함을 체육교사라면 다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육관이 있는 학교도 여러 학급이 한 번에 몰려 불편을 겪었다. 두 학급이면 꽉 차는 체육관에 서너 학급이 동시 수업을 받느라 학생들은 매트운동이나 맨손체조를 하며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경기 O고는 스포츠 비디오를 감상하자는 체육교사의 등을 떠밀다시피 한 학생들의 아우성에 결국 운동장 수업이 이뤄졌다. 운동장을 잃은 학생들은 복도를 육상 트랙이나 축구장 삼아 뛰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선생님의 눈을 피해 간이축구를 즐기고 중구남방 뛰어 다니는 아이들로 창문을 꼭 닫은 실내 공기는 바깥보다도 더 탁했다.
서울 강현중 이창희 교사는 "땀 흘리고 앉아있는 학생들의 애원으로 수업시간에 선풍기를 틀어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또 서울 한영중 박명숙 교사는 "운동장에 못나가 심심한 아이들이 구령대에서 슬리퍼 멀리 던지기 시합을 해놓고 자기네는 운동장에 내려갈 수 없으니 저보고 주워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며 웃었다.
황사 앞에 휴업 학교가 늘어나면서 봄철 야외수업이나 소풍 등의 행사도 취소되기 일쑤였다. 서울 마포초등교는 8일 1학년 소풍이 취소돼 교실에서 김밥 도시락을 먹어야 했고 서울 동교초는 9일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려던 3학년 소운동회를, 계룡초는 10일 개교 72주년을 맞아 `동문과의 만남' 등 성대히 준비한 개교 기념행사를 모두 취소해 학생들이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서울 B초등교처럼 미처 야외학습을 취소하지 못한 학교도 많았다. 아침부터 전화기 4대에선 불이 났지만 이미 대절 차량이 운동장에 왔고 도우미 학부모들도 동의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9일 독립기념관 등지로 떠나려던 3, 4, 6학년은 하루 전에 취소 통지를 하고 일정을 미뤘다.
보충수업 부담 때문에 휴업과 단축수업에 소극적인 학교도 속출했다. 부산과 울산 지역 초등교의 경우 3월말 황사 때는 많은 학교가 휴업과 단축수업을 했지만 이번 황사 때는 보충수업과 수업일수 부담 때문에 정상수업을 해야 했다. 당연히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부산 K초 M교사는 "3월 황사 때 하루 오전수업을 했다가 바로 다음주에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학교 수업일수가 법정 수업일수보다 꽤 여유가 있는데도 학부모와 관리자들은 지금 한 시간 단축하면 다음주에 바로 한 시간을 더 해야한다는 경직된 눈을 갖고 있어 교사들도 선뜻 단축수업을 건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울산 O초 K교사도 "앞으로 황사가 계속될텐데 천재지변에 의한 수업일수 단축 및 가정학습 대체는 학교장 재량으로 융통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정리를 끝낸 교실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경기 진건고는 밤새 이중창을 뚫고 교실바닥, 복도에 두텁게 쌓인 황사를 아침마다 청소하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그래서인지 환경정리가 막 끝난 교실마다 황사의 발생요인, 영향, 대처요령을 보기 좋게 꾸민 벽면 게시물이 눈에 띄게 늘었다.
몸과 마음에 낀 황사를 한방에 털어 낼 청량제같은 소식도 있다. 전북 광활초는 최악의 황사가 닥친 지난달 23일 전교생 분량의 마스크가 담긴 상자가 익명으로 전달됐다. `우리 어린이들이 황사 걱정 없이 학교에 잘 다니기 바란다'는 편지 한 통이 하얀 마스크 위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김맹진 교장은 "아무 흔적도 없는 상자를 보며 진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