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시절 1950년대는 웬만한 집이면 밥다운 밥 세끼를 챙겨먹기가 힘들 정도로 어렵게들 살 때였습니다. 그러니 시골 벽촌에 있는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오시면 당장 마땅한 하숙이나 자취방 하나 구하기가 우선 걱정이었습니다.
오영남 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오선생님도 전에 새로 오셨던 선생님들처럼 완전한 자취방을 구하기까지 우리 집에서 임시지만 숙식까지 함께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아버님은 동네 구장이시고, 농사도 꽤 많이 짓던 우리 집은 선생님 같은 어려운 손님 모시기에는 그래도 제일 나은 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동네 유지인 구장집 아들이요, 선생님들이 가끔 숙식도 함께 하는 당시로서는 부잣집 아들 축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 몇 명 안되지만 반에서는 1등을 하고 반장까지 겸하고 있었으니, 한마디로 기고만장 잘난 체 하던 거만한 어린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 선생님께서 내주신 행동발달사항 기록내용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행동발달사항이 갑자기 엉망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친절 예의성 '다', 근면 협동성 '다', 준법성 '나' 등등. 이전 선생님들이 주신 나의 행동발달사항이 '가' 뿐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건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거기다 가정 통신란에는 "이 어린이는 공부는 잘 하지만 겸손하고 예의바르며 솔선 수범하는 착한 학생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진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고 쓰여있었습니다.
오영남 선생님! 당신께서는 공부 좀 잘 한다고 시건방졌던 나에게 겸손이 제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친절, 예의, 근면, 성실이 사람다운 조건임을 깨우쳐 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가 인간교육을 특별히 강조하는 교육학 교수로 별명 붙게 해 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