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5 (목)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기고> ‘착한’에 대한 단상(斷想)

얼마 전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착한 기기 변경’이라는 이벤트를 벌였다. 통신사를 옮기지 않고 휴대폰만 바꾸면 ‘착한’ 손님이라서 혜택을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따져보니 휴대폰을 바꾸면서 통신사도 바꾸는 소위 ‘번호 이동’을 하면 혜택이 더 많았다. 많은 사람이 그 통신사의 기대와 달리 기꺼이 ‘나쁜’ 고객이 됐다.

요즘 광고나 인터넷 기사에서 부쩍 ‘착하다’는 형용사를 자주 보게 된다. 착한 가격, 착한 몸매, 착한 먹거리 등 도처에 ‘착하다’는 말이 넘쳐나는 걸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착하다’의 의미가 바뀔 것 같다.

왜 이다지도 ‘착하다’에 집착하는 것일까. 일종의 ‘형용 모순’ 어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달콤한 슬픔,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모순되는 단어를 나란히 사용하면 의미 전달은 강력해질지 모르지만 논리적 연결 고리는 약해진다. 합리적 추론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얼마 전 방영됐던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보면 교실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에피소드는 세상살이의 판박이다. 권력과 주변, 인간의 이기심, 배타성 등을 고스란히 담았다. 주인공은 “차별은 당연한 사회의 규칙이고,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참 마음 불편한 드라마다. 하지만 진짜 불편함은 따로 있다. 드라마가 드라마로 끝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얼마 전 잇따른 추문에 휩싸인 일부 교육계의 실태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나쁜 교사인가, 착한 교사인가?

‘착하다’는 형용사가 많이 쓰일수록 세상은 정말 착해지기보다는 단순화한다. 착한가? 나쁜가? 이분법만 남는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귀찮아도 학교의 교육 구조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소외 계층 보호에 따른 피해를 교육 수혜자들이 보는 것은 아닌지 챙겨봐야 하고, 학교들은 욕을 들어도 교육의 성과를 내야 한다.

또 누군가 ‘착한 교사’에 대해 “나쁜 착한 교사도 있다”고 형용 모순 어법으로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 반대하면 착한 교사인가, 나쁜 교사인가? 아니면 착한 나쁜 교사인가, 나쁜 착한 교사인가?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