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착한’에 대한 단상(斷想)
얼마 전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착한 기기 변경’이라는 이벤트를 벌였다. 통신사를 옮기지 않고 휴대폰만 바꾸면 ‘착한’ 손님이라서 혜택을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따져보니 휴대폰을 바꾸면서 통신사도 바꾸는 소위 ‘번호 이동’을 하면 혜택이 더 많았다. 많은 사람이 그 통신사의 기대와 달리 기꺼이 ‘나쁜’ 고객이 됐다. 요즘 광고나 인터넷 기사에서 부쩍 ‘착하다’는 형용사를 자주 보게 된다. 착한 가격, 착한 몸매, 착한 먹거리 등 도처에 ‘착하다’는 말이 넘쳐나는 걸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착하다’의 의미가 바뀔 것 같다. 왜 이다지도 ‘착하다’에 집착하는 것일까. 일종의 ‘형용 모순’ 어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달콤한 슬픔,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모순되는 단어를 나란히 사용하면 의미 전달은 강력해질지 모르지만 논리적 연결 고리는 약해진다. 합리적 추론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얼마 전 방영됐던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보면 교실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에피소드는 세상살이의 판박이다. 권력과 주변, 인간의 이기심, 배타성 등을 고스란히 담았다. 주인공은 “차별은 당연한 사회의 규칙이고,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참
- 한기온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생지원과장·교육학 박사
- 2013-08-29 2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