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보고 생활지도를 떠맡아서 하라고요?” “그게 아니고, 외국학교를 참관해보니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어서 말씀드린 거예요.” “선진국이라고 다 좋은 거 아닙니다. 교장이 생활지도하면 그럼 담임은 뭐합디까?” “담임선생님은 그 반을 책임지고, 교장선생님은 전체의 생활지도를 맡아 하시더라고요.” “아이들만 붙잡고 있으면 그럼 교장이 할 일은 언제 합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저는 그냥 본 것을 그대로 말씀드린 것뿐인데….”
예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북미권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곳에 가서 가장 놀랐던 장면은 푸른 잔디가 깔린 드넓은 운동장이 아닌 너무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교장실의 풍경이었다. 육중한 소파와 응접세트가 놓여있는 교장실만 보다가 붙박이 책장을 배경으로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허름한 교장실을 보니 무척 충격적이었다.
교장실은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 간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들은 의례히 교장실 문을 두드렸고, 교장선생님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의 민원을 해결해주느라 바빴다.
그래서였을까? 그 학교에는 홍일점인 남선생님 한뿐 빼고는 모두 여선생님으로 이루어졌음에도 학교는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만약에 한 교실에서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가 나면 다른 반에서 제재가 들어올 정도로 목소리가 담 밖을 넘어가지 못하게 단속한 탓이다. 선생님들은 모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에는 경기를 낼 정도로 민감해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무척이나 자유로워보였다. 쉬는 시간이 되면 복도에 기대앉거나 누워서 책을 읽거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미술 작품을 말리느라 복도바닥에 죽 늘어놓아도 누구하나 그것을 밟거나 훼손하거나 하는 아이가 없었다. 수백 명이 함께 생활해도 조용하게 질서를 지키는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그 힘을 교장선생님이 솔선수범해 인성교육의 선봉에 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척 인상 깊어서 여러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려보았더니 열에 아홉은 왜 담임이 해야 할 일을 내가 맡아야 하느냐고 굉장히 불편해했다.
폼 나는 교장실에 정장 차림으로 앉아 이것해라, 저것해라, 아랫사람에게 지시하고 명령하고 혼을 내는 딱딱한 교장선생님보다, 허름한 교장실에 편한 차림으로 앉아 아이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부드러운 교장선생님이 훨씬 멋있어보였던 것은 내 눈이 잘못된 탓이었을까?
“가정교육, 엄마에게만 일임할게 아니라 아빠도 함께해주세요.” “인성지도, 담임선생님에게만 일임할게 아니라 교장선생님도 함께해주세요.” 내가 이렇게 부탁드리고 싶은 이유는 아이들의 인성교육이 한낱 엄마나 선생님의 몫으로만 치부돼 버려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아빠나 교장선생님은 가정과 학교라는 사회에서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이기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 한 가정의 가장이, 한 학교의 수장이 인성교육의 선봉에 나서줄 때 비로소 균형 잡힌 인성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내 아이의 일을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의논하고, 미래의 인재가 될 아이들의 일을 선생님과 관리자가 함께 의논하고 나아갈 때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인성부재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
“미안해, 오늘 아이와 함께 못해줘서.” “아냐, 당신이 회사일로 바쁘니까 조금 덜 바쁜 내가 하는 게 맞아. 그건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 “아이들 지도하기 힘들죠? 다루기 힘든 애들 있으면 교장실에 보내주세요.” “우리 반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을 제일 좋아해요. 자신들의 말에 귀기울여준다고.”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해주는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보나마나 어떤 일이 생기면 남의 탓을 하기 이전에 내가 잘못한 것은 없을까 먼저 반성해보는 자세를 배울 것이다. 그런 것만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관리자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한목소리를 낼 때만이 인성이 제대로 된 아이 하나 키워낼 수 있다.
학원 하나 더 보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와 한마디라도 더 대화하는 것! 혁신학교 하나 유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인성을 바르게 닦아주는 것!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이는 나만의 아이가 아닌 우리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아이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