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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교과 집중이수제 이대로 좋은가?

이명박 정부에서 유난히 잦은 교육과정 개정이 이어졌는데 가장 최근에 고시된 국가수준 교육과정 총론은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고시 제 2012-31호로, 이 교육과정은 개정시기로 본다면 2009 개정 시기에 해당한다. 2012년 7월 9일자로 고시한 2012-14호의 개정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교육과정 총론을 일부 개정한 것이다. 주요 개정내용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 및 특성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에 관한 것으로,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중점에서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생의 학기당 이수 교과목 수를 8개 이내로 편성하도록 한다. 단, 체육, 예술(음악/미술) 교과목은 8개 이내에서 제외하여 편성할 수 있다’라고 개정했다.

이 개정문은 아이러니하게도 과목수 제한이 여전히 8개 이내임을 재천명해 집중이수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음을 명문으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단서 조항에서 예체능 교과목을 제외해 기존에 집중이수 과목수 제한에서 제외됐던 교양교과, 특성화고의 실습위주의 과목을 포함할 경우 집중이수제는 사실상 폐기된 정책이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집중이수제는 사실상 폐기된 정책

현행 교육과정 총론 및 시·도 교육청의 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침에서 8개 교과목 제한 규정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체육, 예술, 실습과목을 제외해 학생의 학기당 이수과목 수는 이제 큰 제한을 받지 않는 과거의 수준으로 회귀했다. 이는 제7차 교육과정과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기당 이수과목 수를 가급적 10개 이내로 편성하도록 권장하는 방안과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교과 집중이수제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이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 2009-41호로 발표되면서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2009 개정 교육과정은 학교급으로 보면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고등학교의 모든 교과목을 선택교과목으로 전환하고 기존에 형식상 운영되던 비교과 영역을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전환하는 등 확대 운영해 입학사정관제와 맞물리도록 한 점은 교육과정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꾼 정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야기한 것은 아마도 학기당 이수단위수를 8과목 이내로 제한하는 집중이수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집중이수제라는 용어는 2009 개정 교육과정 총론 전체에서 단 2번만 등장한다. 우리가 말하는 집중이수는 중·고교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중점에서 ‘학기당 이수 교과목 수를 8개 이내로 편성하도록’ 규정해 간접적인 지침으로 고시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시행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집중이수제의 폐해나 역기능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것은 분명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교사, 학생, 학부모 그 어느 누구도 교과 집중이수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고 오히려 폐해를 지적하며 폐기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이 정책의 기능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요하는 것을 의미한 만큼 2009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 아이콘인 교과 집중이수제의 시행이 대한민국의 교육에 기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고 시행 여부를 결정했어야 했다. 

교육과정의 개발기간이 지나치게 짧았기도 했지만, 집중이수제의 폐해를 우려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추진했던 이 정책은 이제 사실상 명분과 추진동력을 상실했다. 교육과정 정책을 입안하거나 추진하는 것에는 많은 변수들이 고려돼야 했는데, 학생의 학기당 이수과목 수를 8개 이내로 무리하게 감축하고자 했던 집중이수제는 이제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학기당 이수과목 수를 ‘8개 이내로 한다’라는 규정은 ‘8개 이내로 권장하는’ 등의 유연한 교육과정으로 설계가 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교육과정으로 설계가 돼 지금과 같은 땜질 처방에 의한 교육과정 수정안이 재차 고시되는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집중이수제는 일부 연구진에 의해 발굴된 정책으로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가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의 일환으로 성급하게 발표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을 무리하게 입안하고 시행해 학교현장은 거대한 교육실험장이 됐고 돌이킬 수 없는 교육과정 퇴행화가 있었다. 결국 학부모 단체나 교원단체 등에서 집중이수제의 폐기를 촉구하기에 이르런 것이다.

수업·평가모델 진화 선행됐어야

원대한 취지로 출발했던 교과 집중이수제는 학습의 연속성 단절, 학생의 학습부담 과중, 비효율적인 학업성취 효과, 입시과목의 집중화로 인한 경쟁 심화, 정서의 황폐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됐고, 교육부의 교육과정 총론 수정 고시를 통해 집중이수제는 사실상 길을 잃고 방황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교과 집중이수제의 취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과의 분산이수에 최적화된 수업모델과 평가모델 등이 개발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수방법만 단순히 바꾼다면 이 정책은 근본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태생의 한계를 갖고 태어난 정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향후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정책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하고 예측한 후, 시험적용을 거쳐서 현장에 적용해야만 한다. 다양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만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이 나아갈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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