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알뜰체험 장터가 있는 날이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전 교직원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늘 제일 먼저 출근하시는데 이 날도 어김없이 1등으로 오셔서 “선생님들, 장갑에 모자 쓰시고 텐트 치는 모습이 꼭 새마을 운동하는 것 같네요.” 하시면서 기분이 좋으신 듯 껄껄 웃으셨다.
처음에는 소수의 남자 선생님들만 텐트를 치려고 하고 있었는데 여자 선생님들까지 합세하여 텐트 치는 일이 동참하자 어렵던 일이 순식간에 쉽게 끝나고 말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협동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텐트 치는 일을 마치자 교장선생님께서는 “여러분들, 지금부터 제가 장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것 받으시는 분들은 500원씩 내주세요?” 라는 농담과 함께 우리들에게 준비하신 귀한 홍삼 음료 한 병씩을 주셨다. 개그 프로그램이 연상되는 듯 배꼽 잡고 웃으시는 선생님들이 많았고 나도 얼른 교장선생님 곁으로 다가가서 “교장선생님, 저도 한 병 주세요.” 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잽싸게 홍삼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멀쩡하게만 보였던 홍삼음료는 누가 먹고 빈병만 넣어뒀던 것이었다. 내용물을 흡입하려고 온갖 애를 써봤지만 목구멍에 넘어가는 것은 하나도 없어 허탈감에 “교장선생님, 빈병이었어요.” 라고 말씀드리고 홍삼 음료수 박스를 순식간에 살펴보았는데 딱 한 병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드시겠다고 기다리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순간 당황한 모습을 애써 감추시며 “조 선생님은 500원 안 냈으니까 드신 걸로 하세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그러고는 홍삼 한 병에 목숨 걸 일도 아니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사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허, 이걸 어떡해하죠? 아까 빈 병 드려서 마음이 걸렸어요.” 하시면서 들어오신 교장선생님께서 아까보다 더 크고 실한 홍삼 음료 한 병을 주고 가셨다. 순간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확 전해지는 것 같아 밀려오는 감동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늘 직원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시는 교장선생님이시란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경험하고 보니 몸 둘 바를 몰랐고 ‘내가 좀 더 센스 있는 사람이었다면 먼저 대접을 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 술을 많이 마셨던 탓에 아침 식사도 거르고 출근해 속도 편하지 않았던 차에 교장선생님께서 주신 홍삼 음료 한 병으로 인하여 차가웠던 온 몸이 사르르 녹아 내렸고 아침부터 왠지 모를 상쾌한 기분 때문에 1교시부터 새 힘이 샘솟았다.
작은 친절이 이렇게 큰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으며 나도 동료 교사나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교직 생활을 한지도 벌써 2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교직이 다른 직업에 비해 안정되어 있고 스트레스도 별로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교직은 매우 힘들고 외로운 직업이다.
몇 해 전, 어느 교수님께서 쓰신 ‘교사의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 라는 책을 읽으면서 교사들은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동료 교사와의 관계 그리고 관리자와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보고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특히 초등교사의 경우 어린 학생들과의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고 그것은 동료 교사나 관리자와의 원만한 인간관계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의집중을 안하고 말썽만 부리고 자기 말만 하는 아동들을 접할 때면 소리도 지르고 커피를 ‘벌컥 벌컥’ 마시곤 한다. 그럴 때면 ‘왜 내가 초등교사가 되었을까?’ 하고 후회도 해봤지만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 어른들 수준에 맞추려는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다시 한 번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교사들은 작은 친절과 관심에 민감하고 그러한 것 때문에 힘이 더욱 생기고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칠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작은 친절을 베푸신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대한민국의 많은 관리자 분들께서 평교사들에게 이렇게 좀 더 다가서는 열린 마음을 가져주신다면 좋겠다. 그럴 때 교사들도 더 신바람이 나고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새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