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학생이 동료교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친일을 했던 사람들도 자신의 생활을 위해 선택한 행동이었다면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 않나요?” 질문을 받은 교사는 “그들의 행동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들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역사를 가르치면서 첫 시간이면 늘 인용하는 말이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다. 단순히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반성 후 적극적 협력 이어져야
지난 2월에는 일본이 주장하는 소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유례없이 고위 관료들이 참석했고 얼마 전 발표된 교과서 검정 내용을 보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담긴 교과서 선택이 증가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가 없는 모습이 드러났다. 침략을 감행했던 일본이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자신들의 행동을 어떻게든 감춰보려는 비겁한 일련의 활동이 우리들을 더욱 분개케 한다. 언제까지 일본은 이렇게 자신들의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감추려만 들 것인가. 일본의 반성이 선행돼야 진정한 한일 관계의 회복과 평화의 빛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반성만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반성에 이어 한일 과거사 문제의 평화적이고 상호보완적인 해결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를 제안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가 다수를 대변할 수 있는 양국 간 공동기구 구축이다. 현재 한일 평화를 위해 민·관을 중심으로 여러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나 몇몇 관심 있는 사람들의 활동에 그쳐 그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법률 등 각계의 대표가 참가하는 범사회적 공동기구가 만들어져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둘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청소년들에 대한 활동 지원이다. 지금 세대에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기 힘들다면 ‘백년지대계’인 교육의 차원에서 ‘청소년 역사캠프’ 등을 통해 진정한 과거의 반성, 현재의 화해와 미래의 공동발전을 준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교총과 중국교육과학문화위생체육공회, 일본교직원조합 등 3개국 교원단체 회원들이 모여 자국의 역사·평화교육 사례를 소개하고, 동북아 역사에 대한 삼국의 의견을 모으는 ‘한·중·일 평화교재실천교류회’ 같은 활동도 적극 권장하고 활성화시키면 좋겠다. 또 이런 교사들의 활동을 학생들이 참관하고 학생들 간의 교류가 이뤄진다면 이 또한 교육적 효과가 상당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일뿐만 아니라 한․중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각성도 필요하다. 연중 행사인양 무슨 일이 있으면 끓어올랐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져가는 행동들을 경계하고 항상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으로 비뚤어지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활동에 우리 스스로가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평화와 화합의 토대는 교사의 몫
역사는 반복된다.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용서와 화합이다. 일본이 잘못한 것은 명명백백하지만 언제까지 그 잘못을 탓하기만 한다면 결코 화합의 길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잘못을 사과하고 반성하면 우리는 그것을 용서하고 미래 세대들을 위한 평화와 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의 진실되고 겸허한 반성과 그것을 받아주는 우리의 관용이 있다면 분명 한·일관계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라 생각된다.
‘동아시아 평화와 화합’이라는 거대한 담론은 비단 역사교사만의 몫은 아니다. 교육현장에 있는 우리 교사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올바른 역사를 이해하고 학생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점을 바로 갖게 해 줄 중책을 갖고 있다. 교사들만의 지식 전달이 아닌 학생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생동하는 역사교육이 진정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