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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01 교원문학상- 동화 가작> 하느님을 안은 작은 천사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굴뚝 연기들이 다시 내려와 어스름이 되는 저녁입니다. 창문마다 불빛 몇 개가 서성이고 동산은 꼬박 밤을 새울 달을 조심스럽게 밀어 올립니다. 이 때쯤이면 민아네 대나무 밭에는 갑자기 식구들이 늘어납니다.

온 종일 수다스럽게 울타리를 누비던 비비새들이 가장 먼저 찾아오고 조금 뒤엔 언덕을 넘다 지친 바람들이 몸을 움츠리며 기어들어 옵니다. 또 산길을 돌아 어둠을 만난 개울 물소리들도 황급히 찾아 듭니다. 이들이 찾아오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언제나 못난이 대나무입니다. 못난이 대나무는 지난 해 봄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또래 친구들은 날마다 마디를 쑥쑥 늘리며 키가 하늘로 뻗어갔지만 이 대나무만은 무슨 까닭인지 성장이 멈춰버리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기다리면 자라겠지 생각했는데 마디는 계속 늘어났지만 키는 아이의 엄지손톱 만큼씩밖에 크지 않아 못난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른 대나무들은 온 종일 큰 키로 바깥 세상과 어울려 이야기도 하고 구경을 하는 동안 못난이 대나무는 그들의 그늘에 가려 외톨이로 혼자 지내기가 일쑤였으니 저녁이면 찾아오는 식구들이 반가울 수 밖에요. 못난이 대나무는 가끔씩 키다리 대나무들에게 애원을 해 보기도 한답니다.

"얘들아 나도 바깥 세상 좀 구경 시켜 줘"
"바깥 구경? 뭐가 보고 싶은데?"
"하늘도 보고 싶고 해님과 이야기도 하고 싶단 말이야"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키다리 대나무들은 듣는 체도 않고 딴전만 피웠지만 그래도 못난이는 행여나 하는 마음에 목이 빠지도록 바라봅니다. 그럴 때마다 지나가던 바람들이 못난이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 잠깐씩 키다리 대나무들의 등을 떼밀고 하늘을 보여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니 눈이 부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도 뜨지 못하면 키다리 대나무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한 마디씩 했습니다.

"그거 봐라, 바깥 세상은 아무나 구경하는 게 아니야"
"누가 아니래, 우리가 그렇게 눈부신 하늘을 가려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맙니?"
"어디 그뿐이니, 따가운 햇볕과 거센 바람도 우리가 막아 주지 않니?"

어찌나 큰 소리로 생색들을 내는지 주눅이 들어 다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어깨를 움츠린 채 종일을 지내던 못난이를 찾아온 저녁 친구들은 들어오기가 바쁘게 이야기 주머니를 열어 놓습니다.

"영민이네 바둑이가 오늘 낮에 새끼를 낳았는데 아주 귀엽더라"
"수진이네 집에 아까 손님이 온 것 같던데 선물들을 가득 들었던 걸"

울타리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던 비비새들의 수다가 끝나면 뒤를 이어 개울물들이 산길을 돌다 만난 산짐승들의 이야기가 한층 흥을 돋굽니다. 다음은 먼길을 지나온 들바람들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그래서 못난이 대나무는 비록 대밭 속에 묻혀 살지만 마을에서 일어난 일, 산과 들의 이야기까지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환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 샘에 빠지면 별님도 어느새 꼬리를 물고 내려와 듣습니다. 그럴 때면 키다리 대나무들이 샘이 나는지 몸을 흔들어 소슬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괜히 발을 굴러 곤히 잠든 생쥐를 쫓아 놀래키기도 하며 곧 잘 심통을 부립니다. 그러나 모두 잠깐일 뿐 이들의 이야기를 막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못난이는 또 다시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떠났다고 아침부터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늦잠에서 깨어난 이슬들이 허둥대다가 높은 곳에서 미끄러지면 이들을 다치지 않게 살포시 받아서 안아 주는 일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마워요 작은 천사님, 천사님의 가슴은 항상 포근해요"
"그래요 천사님, 언젠가는 그 가슴으로 세상을 포근하게 안아 주세요 그러면 세상도 아름다워질 거예요"

이슬들은 해맑은 눈빛으로 마음씨 고운 못난이에게 다정히 속삭여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삭임도 키다리 대나무들의 시샘에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이 못난이가 작은 천사라고? 그러면 우리는 큰 왕자님인가…"
"아니야, 작은 천사를 언제나 포근히 안아 주고 있으니 우리는 하느님이 되겠군"
"그래, 우리는 하느님이야, 하느님!"

키다리 대나무들은 일부러 허리를 굽혀 이슬들의 머리 위에 눈부신 아침 햇살들은 쏟아 부어서 이내 땅으로 떨어뜨리고 맙니다.

"작은 천사님, 우리들 걱정은 마세요, 그리고 희망을 가지세요"
"그래요, 언젠가는 이 하느님 친구들도 천사님의 포근한 품에 안기게 될 거예요"
"그래요, 천사님은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으니 반드시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질 거예요"

못난이 대나무는 이슬들의 말처럼 항상 꿈을 간직한 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님이 등불들을 이끌고 산을 넘을 때까지 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만 늦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눈을 떠보니 부채를 만드는 골선 방 할아버지의 낯익은 목소리였습니다. 골선 방 할아버지는 매년 여름에 한 번씩 이 곳 대밭을 찾아오시어 미인 선발이라도 하듯 예쁘고 날씬한 대나무들만 뽑아 갔습니다.

할아버지께 뽑혀만 가면 예쁜 태극선이 되어 벽을 장식하기도 하고 합죽선이 되어 선녀들의 손에 들린 채 너울너울 춤을 추며 하늘을 날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멀리 외국 여행까지 가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대나무 밭 친구들은 골선방 할아버지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만 못난이에게는 이러한 바램이 모두 그림 속의 떡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예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드디어 연장을 챙겨 들고 대밭을 들어 서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키다리 대나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먼저 할아버지의 눈에 뜨이려고 키 발을 딛고 발돋움도 해 보이고 어깨를 치키며 으쓱해 보이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쑥 뽑혀 나간 친구들은 볼이 터질 것 같은 함박 웃음을 머금고 우쭐대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쭉쭉 뻗은 대나무들 앞에서 연신 흐뭇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며 밑동을 잘라냈습니다.

"올해는 좋은 제목들이 아주 많군"
"글쎄요, 볕이 좋아서 그랬나봐요"

유달리도 뜨거웠던 올 여름 땡볕이 대나무들에게는 좋았던 모양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옆을 따라다니던 민아 아버지도 흐뭇해 하셨습니다.

해가 마당 앞 팽나무 끝에 걸릴 무렵에야 할아버지는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켰습니다.

`이제 다 고른 것일까? 올해는 또 몇 친구들이 떠날까?'

빽빽했던 틈 사이로 하늘이 듬성듬성 보이는 것을 보니 올해도 많은 친구들이 뽑혀 가는 모양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얄미웠던 친구들이었지만 막상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못난이는 섭섭함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손이라도 흔들어 주려고 고개를 드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성큼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처음에는 옆 친구들이겠거니 하며 설마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할아버지는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못난이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만 밑동을 싹둑 베어 버렸습니다.

못난이는 너무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아찔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이 대밭에서도 살수가 없게 되었군, 역시 나는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어'

이런 생각을 하니 난쟁이 대나무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난쟁이 대나무가 울고 있는 동안 뽑힌 대나무들은 트럭 위로 차곡차곡 올려졌는데 자신은 끝까지 실리지 않자 버려질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이 때 민아가 부엌에서 냉수를 한 그릇 들고 나왔습니다.

`혹시 저 부엌 속으로 들어갈지도 몰라'

작년에도 할아버지가 떠나자 남은 대나무들은 부엌에서 태워졌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냉수를 쭉 들이키고 차에 오르시며 못난이를 옆에다 태웠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도중에서 버려지지 않고 집에까지 실려 갔지만 공방 구석에 쳐 박혀졌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나 같은 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겠어'

여기까지 왔기에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던 못난이는 한쪽 구석에 방치된 채 천덕꾸러기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다시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드디어 골선방 할아버지의 부채 만들기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친구들은 뜨거운 물 속에 삶겨 지기도하고 또 따가운 햇볕에 그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몸이 몇 조각으로 나누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롭게 태어날 자신들의 미래 모습을 생각하며 잘도 참아냈습니다. 그런데 못난이 대나무는 이 곳에 와서도 캄캄한 구석에 틀어 박혀 햇빛도 보지 못하는 신세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 가는데 그들만 지켜보자니 더욱 가슴만 아팠습니다.

이러한 못난이 앞에서 다른 친구들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더욱 약을 올렸습니다. 못난이는 밤이면 찾아주던 친구들이 더욱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은방울처럼 맑은 목소리를 굴리며 희망을 속삭여 주던 이슬들의 이야기를 되뇌어 보았습니다.

"천사님은 언젠가 아름다운 꿈을 이룰 거여요"

그러나 이제는 아무 소용도 없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날을 지내던 어느 날, 못난이는 갑자기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올려졌습니다. 못난이 대나무는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올려보았습니다. 도배방을 거치며 여러 가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단장을 한 친구들도 모두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저런 못난이를 어떻게 할까?'

그러나 할아버지의 표정은 아주 밝았습니다. 못난이 대나무는 곧바로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몇 번을 깎이고 다듬어졌지만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못난이는 자신의 변모된 모습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고개를 몇 번이고 흔들어 보았습니다. 자신의 몸 끝에 예쁘게 깎은 물소 뿔이 아교로 붙여지더니 합죽선의 양쪽 가장자리를 덮은 갓 대가 된 것이었습니다.

"고놈 참 마디가 아주 단단하고 고르게 자랐군"

할아버지께서는 마디의 단절이 많아서 최고라고 하시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이리저리 몇 번을 살펴보셨습니다.

"야, 신난다! 드디어 나의 꿈이 이루어졌어, 이슬들아! 너희들의 말대로 나의 꿈이 이루어졌단다"

못난이 대나무는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못난이가 기쁜 것은 자신 때문에 최고급 합죽선이 되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이 하느님 친구들도 천사님의 포근한 품으로 안기게 될 거예요"

바로 그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대나무 밭에 있을 때 자기들이 거센 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막아 주니 자신들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라며 우쭐대던 키다리 대나무들은 어느새 어깨가 축 쳐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슬들의 말대로 못난이 대나무가 그들을 포근히 감싸줄 수 있었습니다. 또 합죽선이 접쳐질 때도 속대가 된 키다리 대나무 친구들은 바깥 세상을 볼 수가 없지만 자신은 갓 대이기 때문에 언제나 바깥 세상을 볼 수가 있어 더욱 가슴이 벅찼습니다.

갓 대가 된 못난이 대나무는 평소에 귀찮게 굴던 속대 친구들의 간청에 귀가 아팠습니다.

"작은 천사님, 갑갑해요. 어서 펴서 바깥 세상 좀 구경시켜 주세요"

어떤 친구들은 이왕이면 선녀들의 손에 들려져 너울너울 춤을 추며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친구는 천사님 덕으로 외국 여행을 했으며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훨훨 날아서 넓은 세상도 구경할 수 있다나요. 어떤 친구들은 아름다운 한국화가 그려져 벽의 장식용으로 쓰여야 자신들도 항상 바깥 세상을 구경한다고 했습니다.

못난이 대나무는 그들의 꿈이 모두 이루어졌으며 했습니다. 못난이 대나무는 그 날밤 속대들을 포근히 안고 공방 구석 여기저기에 배어있는 할아버지의 너털웃음과 댓 살 빚는 소리를 들으며 태어나서 모처럼 포근하고 깊은 잠을 청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꿈을 꾸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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