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새벽은 왠지 모를 긴장감이 밀려온단다. 감독관으로 너희들의 그 투혼이 담긴 현장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긴장되거든. 감독 업무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며 마주친 너희들의 뒷모습에서 묘한 여운을 느꼈단다. 길게는 12년, 짧게는 3년 동안 졸린 눈을 비비며 이 날만을 향해 달려왔던 그 험난한 과정을 감안하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하는 기대보다는 결과에 대한 부담감으로 오히려 어깨가 쳐진 것 같아 안쓰러웠단다.
아직 기회는 열려있다
지금쯤이면 가채점을 통해 자신의 성적을 확인했겠지. 언론에서는 언어와 탐구가 평이했고 수리와 외국어가 어려웠다는 반응인데 예상보다 점수가 잘 나왔으면 여유를 갖겠지만 반대로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했으면 허탈감에 빠질 수도 있을 거야. 행여나 시험을 망쳤다면 아마도 지금이 시험을 준비하던 그 순간보다 더 힘들고 그래서 더 고통스러울 거야.
그렇지만 알다시피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잖니. 수시 2차 모집 원서를 접수하는 대학도 있고 특히 논술이나 적성검사를 실시하는 대학에 지원하면 막판 뒤집기도 가능하단다. 정시모집에서도 특정 영역의 성적이 낮으면 그 영역의 반영 비율이 낮거나 아예 반영하지 않는 대학을 찾으면 되고, 표준점수와 백분위점수 중 자신의 성적이 어느 점수를 적용하는 것이 유리할지 따져 볼 필요도 있단다.
이렇게 ‘새로운 입시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인내하며 기다려온 너희들의 입장에서는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어. 시험이 끝났으니 잠도 실컷 자고 친구도 만나고 영화도 보면서 평소 미뤄뒀던 일을 당장 실행에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거야. 그렇지만 한 발 물러서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미래를 위해 더 치밀하게 분석하고 적절한 전략을 세우면 아직 열려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단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변하지 않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금처럼 소중한 시간도 없다는 거야. 평소 책 속에만 파묻혀 보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고 폭넓은 교양과 상식을 쌓을 절호의 기회거든. 세상은 너희 자신이 만들어가고 창조하는 것이란다. 케케묵은 지식이나 낡은 관념에 휩싸여 흐르지 않은 물처럼 자신을 고정관념의 테두리 속에 가둬놓으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전에 썩어버리고 말 거야. 배터리도 일정 기간이 다하면 충전해야 하듯이 지금은 그동안 쌓아온 지식에 새로운 경험을 더해 얻은 지혜로 재충전할 시기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쌓아둔다면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친구보다 10년 후에는 네가 더 경쟁력 있고 인정받는 실력자가 될 수도 있어.
긍정이 너희 앞길의 후원자
더 이상 지나간 시험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이란 원래 원하는 대로 풀리는 법이 없단다. 넘어지고 깨지면서 커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래서 흔히 권투나 마라톤 같은 스포츠에 비유하는 것이지. 지금부터 감정을 추스르며 자신을 냉철하게 살펴보거라. 그리고 얼마든지 만회할 길이 남아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너희 모두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모든 것을 미룬 채 오로지 학업에만 정진했단다. 그 모든 과정을 오직 성적 하나로만 승자와 패자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란다. 오히려 열정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향해 달려왔기에 모두가 승자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또한 그 동안 공부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주위 분들, 특히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 했던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사랑하는 제자들아! 좌절보다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긍정이 너희들의 앞길에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저 넓은 세상을 바라보자. 그리고 함께 외쳐보자. “아자, 아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