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동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어린이 유괴예방 및 성폭력 안전 교육을 실시했다. 이번 교육은 약 40분간 1~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는데 어린이 성폭력의 주된 경로가 유괴임을 감안해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번 교육이 특별했던 것은 단순한 동영상 시청이나 전문가가 나와서 하는 일방적인인 강의로 진행된 정적인 수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직접 치안의 일선에서 뛰고 있는 현직 경찰관들이 학교를 방문해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담아 생생한 목소리로 역할극을 선보였다.
상황극의 내용은 학생들이 흔히 격을 수 있는 네 가지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상황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낯선 아저씨가 접근해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가셨다고 말하며 같이 갈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낯선 사람이지만 아이의 이름을 분명히 말하고, 아이가 머뭇거리자 아버지가 심하게 다쳤고 큰일이 났음을 강조하면서 급히 재촉하는 상황이 되면 아이들은 당황스러운 심정으로 따라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 경찰관이 나타나 대처법을 알려준다. 당황스럽겠지만 먼저 부모님께 전화해서 확인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연락이 안 될 때에는 다른 가족의 도움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두 번째 상황은 하교길에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소재로 유혹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재미있는 게임을 공짜로 하게 해 준다면서 꾀거나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집에 귀여운 강아지들이 있으니 보여준다면서 데려가는 등의 수법이다. 심지어는 강아지가 여러 마리 있으니 한 마리 줄 수 있다는 얘기까지 할 수도 있다. 이럴 때도 절대로 따라가지 말고 부모님께 먼저 여쭤보겠다고 말하면서 자리를 피하라고 가르쳐준다.
세 번째 상황은 집에서 혼자 있을 때 택배기사로 위장해 접근하는 경우다. 초인종이 울리며 나타난 택배 기사가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아이는 들은 바가 없어 주춤거리지만 택배 기사가 아버지 이름까지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물건이 무거워서 문을 열어달라고 재촉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택배 온 것이 맞다고 생각한 아이는 문을 열어주게 된다. 하지만 이럴 때는 절대로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 경비실에 맡길 것을 부탁할 수도 있고, 계속 열어달라고 할 경우에는 부모님께 상황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
네 번째 상황은 성추행 상황이다. 낯선 아저씨가 아이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예쁘다고 한다. 이럴 때는 바로 주변의 아동안전 지킴이집으로 뛰어가야 한다고 경찰은 조언한다. 경찰들은 그러나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어린 학생들이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담당교사는 어린이들에게 충분히 있을 법한 위험한 상황을 현직 경찰들이 역할극으로 보여줘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평했다. 학생들도 역할극에 흠뻑 빠져 유괴나 성폭력과 같은 무서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은지 현장감 있게 학습할 수 있었다. 특히 학생들이 평소에는 어렵게 느껴지던 경찰들이 직접 주인공이 돼 연극을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근한 상대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사실 어린 학생들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됐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내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아이들에게 지혜와 힘을 내서 대처하라고 하기보다는 옳지 않은 생각을 가진 범죄자들에게 다시 한 번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를 생각하고 죄짓기를 포기하려는 의지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일견 더 쉬워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어른들에게 자제를 당부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대처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어린이들에게도 스스로를 더욱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경찰들이 보여준 역할극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경찰들의 역할극을 통해 배운 어린이 유괴와 성폭력 대처법이 어린 학생들의 기억에 남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안전하게 자라났으면 좋겠다. 더 많은 학교들에서 경찰과 연계해 아이들의 머리에 확실히 남을 수 있는 예방교육을 실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