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 있던 5월도 지나갔다. 매년 스승의 날을 전후해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들의 권위를 세워주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약화되고 있는 선생님들의 권위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이런 주장에는 선생님들의 권위가 약화되고 있는 것이 외부 환경의 변화때문이고, 그렇기에 선생님의 권위는 선생님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그리고 교원들 역시 그러한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생각이 과연 타당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권위의 바탕은 전문성과 헌신
영국의 교육철학자인 피터즈에 따르면 교사는 직위상의 권위와 전문지식의 권위, 전문가적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직위상의 권위는 국가에 의해 교원자격을 갖고 교사의 직위에 있는 교사에게 제도적으로 부여하는 권위를 가리킨다. 전문지식의 권위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교과에 정통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때 인정받게 되는 권위다. 전문가적 권위는 교사가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한 적합한 교육방법을 동원해 잘 가르칠 때 가르치는 전문가로서 인정받는 권위다. 여기에 도덕적 권위를 추가할 수 있다. 도덕적 권위는 교사가 교직생활에 헌신하며 학생들의 역할모델이 될 때 인정받는다.
훌륭한 교사라고 칭송받는 교사가 갖는 권위는 제도적으로 부여되는 직위상의 권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세 가지 권위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사람들이 아무리 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주려 해도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세워줄 수 있는 권위는 직위상의 권위뿐이기 때문이다. 전문지식의 권위나 전문가적 권위, 도덕적 권위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제도적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생님들 자신의 끊임없는 연찬(硏鑽)과 헌신적인 교직생활의 결과로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에게 자녀들을 잘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사랑의 회초리를 만들어 드린다고 해서 교사들의 권위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교원예우 규정을 만들고, 교권보호조례를 제정한다고 해서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선생님들을 이전보다 더 존경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는 선생님들이 교과 실력이 뛰어나고,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며 적합한 교수방법으로 가르침에 헌신하면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따른다. 그런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질서를 유지하는 데 회초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매년 스승의 날을 계기로 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주자는 다짐도 필요하고 외침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선생님들의 권위가 저절로 세워지지는 않는다. 실력과 전문성 그리고 헌신이 뒷받침되지 않는 직위상의 권위는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다.
스승의 날을 성찰의 기회로
이제부터 스승의 날이 있는 달에는 우리들이 선생님으로서 스스로 권위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어느 정도 기울였는지 돌아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자. 교과지식을 심화시키기 위해 평소에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지, 새로운 교수법을 터득하고 기술을 활용하려고 노력했는지 등을 점검해 보자. 그리고 학생들의 세계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학생들과 몇 번의 대화를 했는지 헤아려 보자. 학생이 배운 것을 모르겠다고 찾아왔을 때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었는지, 고민을 털어 놓을 때 시간을 내서 경청하기보다는 시간이 없다는 투로 귀찮은 표정은 짓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그렇게 스승의 날을 선생님들이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자신들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평소에 열심히 노력하였는지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날로 삼아 보자. 그럴 때, 올해 한국교총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원들 스스로 압도적으로 답했듯이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진정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적극적인 사고와 열정이 있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