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가정이 깨지고 있는 것이 이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정이라는 제도 존립 자체가 위협 받고 있다. 사회와 국가의 기본 구성단위인 가정이 깨지는데 사회는 온전하겠는가. 현재 대한민국에는 표출되는 여러 주장들을 통합하고 조정할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고 한 번 내놓은 주장은 굽히지 않으며 함부로 비난한다.
권위시대 가고 계약사회로
전통적으로 존중되던 스승의 권위도 존중되지 않는다. 지금의 어른들이 학교에 다니던 과거에는 학부모가 일단 학교에 불려오면 선생님들에 대한 예우가 극진했다. 그런데 이제는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선생님을 폭행하는 일이 빈번해 지고 있다. 심지어는 학생이 학교에서 선생님을 폭행한다. 학교에서는 쉬쉬하고 감추고 싶지만 언론은 신이 난 듯 여과 없이 보도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권위가 지배하던 사회가 이제는 끝나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사회가 이제는 전통과 권위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서구 선진국과 같은 계약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그 변곡점(變曲點)에 있는 것이다.
미국과 같은 계약사회에서는 결혼 전에 미리 나중에 갈라설 경우를 대비해 각자 자기 소유의 재산에 관하여 약정을 한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주식상장일 다음날 결혼을 했다. 나중에 이혼할 경우에 분할 대상 재산에 자신의 엄청난 주식이 포함되지 않도록 그와 같이 결혼날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계약사회의 특징이 드러난다. 필자는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 몇 년 머문 적이 있다. 아이들은 공립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수시로 학부형을 불러 학교의 교육방침 등을 설명하고 학칙에 관하여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학부모들은 낮 동안의 업무로 피곤하지만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학교로 모인다. 학칙을 여러 번 위반하면 결국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알도록 하는 것이 미국 사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급할수록 원칙에 매달려야 산다. 계약사회를 규율 하는 것은 권위가 아니라 규범이다. 학교에서의 교육활동중 학생을 직접 규율하는 규범은 학칙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는 계약사회 진입에 맞춰 학칙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한다. 먼저 엉성하고 관대하게 규정돼 있는 학칙들을 세밀하게 정비·강화하고 위반할 때에는 그대로 처분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가 학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학부모에게 학칙 숙지시켜야
학칙의 엄격한 집행을 위해서는 사전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이를 숙지시켜야 하고 학칙을 어기면 그때그때 학생과 학부모를 불러 대화를 통해 학칙 위반임을 알리고 어떠한 처분을 받게 됨을 경고해야 한다. 그와 같은 경고 후에도 잘못된 점을 시정하지 않을 때에는 엄격하게 학칙을 적용해 당해 학생을 징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학생은 반복적으로 학칙을 위반하고 다른 학생에게 악영향을 끼쳐 학교는 엉망이 된다. 지금의 현실이 그렇지 아니한가.
결국 학칙 적용을 위해서라도 학생·학부모와 선생님과의 대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일도 많은데 어떻게 대화할 시간을 갖는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면 지금 학교상황을 감당할 다른 대안이 있는가. 교권보호를 위한 법률을 만들어 놓으면 바로 교권이 확립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큰 테두리를 만든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학칙 적용을 위한 선생님들 자신의 노력이 없이는 교권확립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2012년 들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개정을 통하여 학칙을 정비할 기반은 갖춰진 셈이다. 학칙에 무엇을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서 이를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정비해 놓으면 이를 알리고 적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학칙을 정비하고 꾸준히 이의 엄격한 적용을 위해 노력해 나갈 때 교권은 서서히 확립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