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학력·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대학이 독자적인 전형을 개발해 학생들을 밀실에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교육개발원이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연 `우리 사회의 학력·학벌주의 극복을 위한 정책 방향과 과제' 포럼에서 김동훈 국민대 교수는 "출신대학에 따라 `학벌카스트'가 자연스레 형성되는 이 사회의 서열관념을 끊기 위해서는 우선 수능시험을 정점으로 형성된 시험의존의 교육 및 평가체제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초중등교육에서부터 단일한 평가기준에 따라 전체 학생의 석차를 매겨 상벌을 가하는 교육활동이 서열관념을 생성시키고 있다"며 "이 같은 시험대비 즉 입시위주 교육이 지배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경제적이고도 손쉬운 교육이며 피교육자들을 가장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메카니즘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교수는 "흔히 미국의 SAT를 수능시험과 비교하지만 입학사정에서 SAT 점수의 비중은 전체요소의 10분의 1정도이며 SAT은 사립기관이 시행하고 수시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모든 학생이 치를 필요도 없는 성격"이라며 "야만적인 제도인 수능시험이 철폐되지 않는 한 중등교육은 예속될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수능시험 폐지론과 함께 김 교수는 서열관념을 완화시키기 위해 "대학이 획일적인 시험 대신 독자적인 선발기준에 따라 학생을 밀실에서 뽑는 비공개선발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 대학이 운영하는 공개선발 원칙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토대로 하지만 그것이 결국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국내 유수 대학들은 공개선발과 선발기준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선발기준이 타 대학보다 높고 따라서 서열체제에서의 우위를 객관적으로 공인받기를 원한다"며 "바로 거기서 명문대학 학생들의 교육외적 특권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 여학생의 입학을 놓고 입학사정위원들이 성적뿐만 아니라 추천서, 에세이, 학교활동 등을 검토하며 격론을 벌이는 미 명문대학의 예를 든 김 교수는 "지원자가 대학이 원하는 입학원서와 서류를 제출하면 이를 독자적인 재량 하에 심사하고 합격자에게 고등교육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은 일종의 사적 계약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입학이 대학당국과 지원자간의 사적인 계약으로 철저히 격하되고 공적인 수면위로 부상하지 않을 때 참된 교육의 장이 열릴 수 있다"며 "비공개선발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험제도는 금지시키되 그 외의 학생 선발권은 대학에 재량권을 주고 선발 후에는 대학간 서열을 조장하는 자료의 공개를 일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서울대를 비롯 국가가 육성한 종합국립대학들이 `학벌우상'이 되어 대학서열을 조장하고 중등교육을 황폐화시키는 기반이 됐다"며 "대학 운영에서 국가는 손을 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학력주의의 실상과 대응방안'을 발표한 최돈민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실력보다는 학력에 의해 임금과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지표들을 제시했다. 최 연구위원은 "학력별 임금수준을 보면 고졸자의 평균임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 대졸자의 임금은 1998년에 158%에 달하는 등 격차가 심해 학력주의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와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고학력이 요구되는 전문·기술·행정 관리직과 사무관리직이 증가한 반면 농림 어업직이나 단순 사무직이 급격히 감소한 것도 입시 과열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최 연구위원은 학력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연령 또는 학령별 로 학업능력, 일반 직무능력과 직업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의 개발 △학문지향 및 실무지향 대학으로의 기능분화 △다양한 대학입시 전형 방식·자료 개발과 예고 △자격과 학력간의 호환체제 구비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