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에 ‘망양보뢰’(忘羊補牢)라는 말이 있다. ‘양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속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비슷하나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보통 이 말을 이미 실패한 뒤에 뉘우쳐도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초나라 장신(莊辛)이라는 사람과 양왕(襄王) 간에 일어났던 일화에서 생겨났다. 장신이 양왕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떠나버리자 양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우친 후 다시 그를 불러 대책을 물었다. 그러자 장신은 "세상 사람들이 ‘토끼를 발견하고 사냥개를 돌아봐도 아직 늦지 않았으며, 양을 잃고 외양간을 고쳐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들 합니다"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준비하여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를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학교의 하이킥!’이라는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하다. 같은 반 학생의 돈을 빼앗고 때리는 일은 이제 세간의 관심을 끌지도 못할 평범한 일상이 되고 있다. ‘선생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먼지만 켜켜이 쌓인 고전 속의 문구로 치부될 뿐이다. 교사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을 나무라면 곧장 대들기 일쑤다. 급기야는 교무실에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해 중상을 입히기도 한다. 대한민국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어찌하랴!
이제라도 우리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허물어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학교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도덕성’의 기운을 일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도덕성은 남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자신의 윤리적 가치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이다. 거기에는 많은 요소들이 담겨있다. 정직, 친절, 타인에 대한 배려, 준법정신, 인간존중 등은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능력은 지식의 단순한 암기나 순응 교육만으로는 잘 길러지지 않는다. 학생들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함께 토론하며, 이를 직접 실천해보는 생활경험 속에서 발달한다. 어린 나이일수록 그 효과는 배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예절을 지키는 것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자세에서 출발하는 도덕성의 한 바탕일진데, 정작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이를 도외시하고 있다. 한때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15가지의 예절을 배웠지만 지금은 단 4가지만 배우고 있다. 한 학년 일 년 동안 겨우 한 가지의 예절만을 익힌다. 그것도 어떤 학년의 학기에 몽땅 한꺼번에 배우고 말 수 있다. 더군다나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경험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는 예의를 익힐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임에도, 우리나라 초등학교 저학년 교육과정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 모두 글로벌 창의 인재를 기른다는 교육당국의 이념에서 비롯된 일이다.
학교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도덕성이 움트지 않는 한 건전한 학교문화는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 어느 학교 교실 한 구석에서는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하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운 시선만 타는 가슴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반발이나 앙갚음이 부담스러워 그들의 무례한 행동을 애써 외면해 버리는 교사도 있을 수 있다. 무슨 조례나 학칙, 상담만으로 그런 문제들이 해결될 리 만무하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그들의 가슴에 도덕성의 기운이 살아 꿈틀댈 때 비로소 우리나라 학교사회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외양간을 고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