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전 가슴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분, 친구의 아버지이자 나의 소중한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정긍렬 선생님.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외교관의 꿈을 갖고 밝게 생활하던 나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초 여름이었다.
학기말 고사를 앞 둔 어느 토요일 허름한 생선상자로 이은 울타리에 양철 지붕의 우리 집에 불이 나고 말았다. 마침 서울에서 은행을 다니던 큰 형이 갑작스레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안 계신 와중에 발생한 화재로 집이 다 타버렸으니 교복도 책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1주일 후 큰 형의 죽음 소식이 전해져 왔다. 절망이었다. 신부님 사제관에 기거하며 학교를 나갔지만 모든 의욕과 희망이 꺾인 상태에서 나는 방황했다. 저녁이면 술에 의지하고 부모님을 외면하고 비오는 날이면 학교를 결석한 채 대전의 형 산소에서 흐느끼다 돌아오곤 했다.
내 인생의 큰 고비였던 그 순간에 바로 그 분, 정긍렬 선생님이 계셨다. 공부를 포기하려는 날 붙잡고 눈물을 보이시던 선생님. "바다를 보러 가자. 그래야 너는 살 수 있어."라며 수학여행비를 대신 내주시던 선생님. 내가 학교를 포기하고 싶다고 하자 선생님께선 한 마디로 답하시며 고개를 돌리셨다. "안돼. 이대로 너를 놓아주면 너는 아무데도 갈 곳도 없고, 살려고도 안할거니까."
그렇게 사랑과 이해로 달래고 어루만지며 지켜주신 선생님 덕분에 이젠 교사가 되어 나처럼 아픈 아이를 살피며 생활한지 어언 15년. 의젓한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가슴속 그 분께 감사의 절 한 번, 따뜻한 식사 한 번 대접 못했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무심한 제자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을 자랑스레 하늘에서 지켜보시며 내가 더 훌륭한 교사의 모습으로 보답하는 걸 선생님은 기뻐하시리라.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 하나. 삼일간을 결석하고 그 날 저녁 무렵 길에서 마주친 선생님은 나를 보시고 이 한마디를 남기고 웃으시며 돌아서셨다. "성근아, 내일은 비 대신에 환한 태양이 뜬다는 구나."
선생님, 그리운 정긍렬 선생님. 이제 다시 뵐 수는 없지만 언제나 기쁨과 슬픔을 선생님과 함께 하렵니다. 그리고 사랑을 잊지 않는 따뜻한 선생님으로 살겠습니다. 보고싶은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