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련만, 최근의 학교교육 현실이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필자의 연구보고서가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이 덕분에 필자는 연초부터 때아닌 전화와 인터뷰 홍수에 시달려야 했다. 하나같이 위기의 실상은 어떠하며 또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사실, 필자의 연구(학교교육 위기의 실태와 원인 분석)는 처음부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지지난해에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이른 바 '학교붕괴'에 관한 논의가 다소 과장되고 선정적인 논조였다는 판단 아래, 실제로 학교교육이 처한 현실을 차분하게 밝혀보려는 의도였다.
이를 위해 교실 현장을 들여다보고, 학생과 교사의 의식을 조사했으며, 또 거시적 차원에서 학교를 둘러싼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들의 결과는 예상보다도 더 학교교육에 대한 세간의 비관적 견해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교실은 더 이상 정숙한 학습의 장소가 되지 못하였고, 많은 학생들과 교사는 이미 학교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 학생들의 1/3 가량은 학교에 반드시 다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고, 학생들의 73%는 교사들이 자기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른 바 N세대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간에 정서적 이질감은 물론 일상적인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수에 대한 획일적 통제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종래의 학교교육 체제는 지식기반사회에 들어서면서 사회적 유용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대신 대안학교나 탈학교운동이 커다란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요컨대, 외형적으로는 학교교육이 그런 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심층적으로는 이미 그 존립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는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세상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고 아이들 역시 딴판으로 달라졌는데 학교는 거의 옛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한 학급에 40∼50명이 유지되고, 다수의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군대식의 규율이 유지되고 있다. 자신이 원하든 않든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 교과를 배우는 동안에 아이들은 아예 학습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다.
최근 몇 년간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지만, 여전히 학교 교실은 가정이나 회사에 비해 낙후된 시설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학교(교사)의 자발적인 변화 시도를 가로막는 관료제적 교육행정 체제와 거기에 너무도 익숙해진 의식과 관행들이다. 따라서 갈수록 사회와 학교, 아이들의 의식과 학교 현실간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교사는 심각한 정체성의 혼미를 겪고 있다.
이렇게 보면, 오늘의 학교교육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논리적으로는 간단하다. 학교를 사회의 변화, 달라진 아이들에 맞추어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의 다양한 관심과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학급당 인원을 대폭 줄이고 교육과정의 선택 폭을 크게 늘린다든지, 인터넷 등을 통한 개별화 학습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학교의 수업과 학교 밖의 다양한 학습을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꿈같은 이야기다. 돈도 없고 제도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많은 변화를 추구했던 지난 수년간의 교육개혁 결과가 말해주는 바이기도 하다. 귀책사유가 어디에 있든,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도가 높으면서도 실제로 이루어지는 변화는 너무도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절망적인가? 언론의 표현대로 학교는 끝내 '붕괴'되고 말 것인가? 적어도 교육에 몸담고 있는 우리로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길은 있고 또 있어야 한다. 일차적인 문제는 상황 인식의 절박성과 의지의 문제이다. 교육 가족 모두가 정말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 경우 필자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학급당 인원수를 30명선 이하로 줄이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단위학교 특히 교사의 자율성을 획기적으로 신장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현재 시범운영 중인 자율학교들의 성과는 눈여겨볼 만하다. 최소한의 여건을 개선하고 교육과정과 학교의 운영을 일선 교사의 손에 맡긴다면 학생들과 교사의 마음은 의외로 빨리 학교 안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