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교대 졸업생보다 2년 늦게 교사가 됐다. 초임에, 그것도 26학급의 농어촌 지역 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게 된 것이다. 덩치가 나보다 큰 녀석들이 대부분이고 여자 아이들도 성숙해서 제법 숙녀 모습 보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로서는 여러 모로 다소 위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참으로 다행인 것은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같은 학년에 선생님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2년 교직 경력이 있는 내 친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를 도와줬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 이성에 지나치게 일찍 눈을 뜬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 잘못한 아이들을 훈계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내가 하나하나 겪어가는 문제들을 짚어주고 해결책을 말해줬다. 친구이지만 2년 교직 경력 선배는 정말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덩치가 큰 남자아이 몇 녀석들이 이웃 주민의 집 지붕에 우유를 던져 터뜨리고 돌을 던져 지붕 콘크리트 조각을 깨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크게 노하셔서 학교로 찾아오셨다.
범인을 색출하려고 6학년 모두를 강당으로 불러 잡아내 범인을 잡은 결과, 그 불상사의 주범이 우리반 남자아이들 2명과 옆 반 남자 아이들 2명이었던 것이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날 우리반 아이들 2명을 특별실로 불러놓고 야단을 쳤다. 녀석들이 도무지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엉덩이를 힘껏 때렸다. 한참을 혼을 내고 그날 방과 후 녀석들을 조용히 불렀다.
“아프냐?” “네.” 보건실로 데리고 가서는 보건선생님께 안티프라민을 달라고 했다. “너희들이 남자니까 내가 발라줄 수는 없고, 저 쪽 침대에 가서 서로 엉덩이에 약 발라줘.”
그렇게 그날의 사건은 끝이 났다. 초짜 선생님의 무서움을 이제야 알았는지 말썽꾸러기 남자 아이들도 그날부터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들었다.
옆 반에서 사건을 본 친구는 “야. 너 강단 있게 아이들 잘 다루더라. 힘들었지?” 하면서 위로와 격려를 함께 해줬다. 사실 그일을 그렇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친구의 조언 때문이었다. 같은 직장 안에서 멘토를 만나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친구는 그 다음해 바로 전근을 갔지만 가끔씩 말썽꾸러기 남자아이들을 보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