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후 한 달 뒤 후학기 인사발령으로 초임학교에 발을 내디뎠다. 경북의 작은 면단위 농촌에 소재한 중학교였다. 고향을 멀리 떠나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온 나에게 교장선생님은 숙소가 정해질 때까지 학교 숙직실을 이용하게 해주셨다. 차일피일 자취방 구하는 일을 미루다 보니 두 달 가까이 숙직실에서 먹고 자야만 했다.
처음에는 학교랑 가까워 편리하다 생각했지만 차츰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도 들고 텅 빈 학교에서 주말을 보내려니 무료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빈 교정을 보노라니 고향생각이 가슴을 찔렀다. `뭘 하면 향수를 달래볼까' 생각하던 나는 노래를 불러 보고픈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길로 교무실에 간 나는 방송시스템을 조작하고 볼륨을 한껏 높인 후 마이크를 잡았다.
떨리는 목청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니 평소의 애창곡이 절로 나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요∼시월의 마지막 밤을∼' 학교 주변 산등성이에 찾아든 가을정취에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딱이었다. 흥이 난 김에 이용복의 `그 얼굴에 햇살을' 이종용의 `너'를 온갖 감정을 다 잡으며 열창을 하니 교무실은 어느새 나의 리사이틀 무대였다. 그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예, ××중학교 교사 ×××입니다" "선생님예∼저 ×××인데요" "어, 그래. 무슨 일로 전화했니" "딴 게 아니고요, 지금 선생님 목소리가 마을까지 크게 들려서 전화했심더"
아뿔싸. 이게 무슨 소린가. 허둥지둥 사태를 분석해보니 조작 미숙으로 나의 괴성이 외부 스피커를 통해 온 마을에 울려 퍼진 것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그 노래를 듣고 황당해 하다가 진원지를 파악하고 배꼽을 잡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광란의 콘서트' 이후 몇 달 동안을 나는 학생들과 주민들의 놀림 때문에 곤욕을 치렀지만 그 때 그 일은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 돼 버렸다.